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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y의 사소한 긁적임 Dec 19. 2023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음식은

[글루틴 13기 챌린지] 마이 페이보릿 아메리칸 푸드 이즈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국 음식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무조건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다. 뭐 그런 음식 있지 않은가. 김치를 보면 빨간색과 파란색이 음양으로 어우러진 동그라미(한국)가 생각나고, 초밥을 보면 빨간 동그라미(일본)가 생각나는데. 아마 다른 사람들은 다른 음식을 생각하겠지만,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는 정말 나에게 빨간색 줄과 파란색 배경의 하얀 별들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음식이다. 

츄릅... 맛은 알지만 더 먹고 싶은

내가 처음으로 미국에 갔을 때 먹었던 식사가 바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였다. 2019년 2월, 아주 추운 날 남편이 자기 가족을 소개해주겠다며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오하이오라는 주에 도착했고, 새벽 한 시에 정말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운전을 해서 남편 부모님 댁으로 향했다. 시차 때문에 밤낮도 뒤바뀌고,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뵙는다는 사실에 너무 긴장을 한 나머지 새벽 두 시, 세 시가 되어도 계속 뒤척였다. 남편 눈도 말똥말똥했고, 새벽 다섯 시 정도가 되었을 때 남편은 같이 아침 먹으러 가자는 이상한 소리를 했다. 아니, 새벽 다섯 시에 어떻게 식당이 여냐고 했더니, 여기 아침 주는 곳은 새벽 다섯 시에도 영업을 한다는 거였다. 남편가족과 함께 동네에 있는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 앞에 작은 간판 (레터보드라고 한다)은 철자로 ‘Bacon & Eggs for 4.99’라고 쓰여있었고 큰 간판은 Diner라고 적혀있었다. 

2019년에 간 곳은 아니지만, 밥 에반스는 미국의 다이너 체인점. 저 레터보드만 보면 미국인 게 실감 난다

다이너에 들어서는 순간, 정말 커피의 쓴 향과 베이컨의 기름 냄새가 야릇하게 섞여 코를 자극했고, 정말 미국에 왔구나 실감이 났다. 우리가 유일한 손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나이가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이 바 자리에 앉아서 혼자 신문을 읽으시면서 커피를 마시고 계셨고, 할머니들은 부스에 앉아서 이야기를 하고 계셨다. 우리도 부스에 앉았고, 한 아주머니가 오셔서 쌸라쌸라 인사를 하시고 나서 블랙커피 한 잔씩을 따라주셨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잊게 하는 스트롱 블랙커피

주황색 머그컵에 갓 내린 블랙커피가 채워졌고,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은은하지만 강한 카페인에 잠이 벌떡 깼다. 모든 것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로 된 테이블에 흠집, 세월이 보이는 머그컵, 그리고 아들을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워 환하게 웃는 시어머니의 잔주름까지. 한 모금 더 마시니, 빈 속에 뜨뜻한 커피가 들어서면서 뱃속이 허기지기 시작했다. 뭔가 든든한 아침식사를 먹고 싶어 지면서 메뉴를 집어 들었다.

정말 우리나라 김밥천국만큼이나 메뉴가 많았다. 프렌치토스트, 팬케익, 비스킷 앤 그레이비, 등등… 그중 나의 눈을 사로잡았던 건 ‘Farmer Breakfast’. 왜 파머? 농부? 했더니 시아버님이 옛날에는 농장일 하는 사람들이 이런 아침을 먹었다고 하셨다. 구성을 보니 팬케익 3장, 베이컨 3줄, 소시지 3개, 계란프라이 2개에 비스킷 (KFC에서 파는 그것)까지 나오는 파머스 브렉퍼스트. 이거다.  남편은 ‘너 그거 다 못 먹을 거야'라고 경고했지만 미국에 왔으면 이 정도는 먹어야지, 하고 호기롭게 시켰다.

농부아침 = 이천칼로리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였다. 팬케익도 내가 상상했던 주먹사이즈가 아니라, 정말 내 얼굴 사이즈 만하게 나왔고 시럽도 한 소쿠리가 사이드로 딸려 나왔다. 베이컨은 구워졌다기보다는 바삭하게 튀겨져 나왔고, 소시지는 우리나라에서 먹던 통통한 독일 소시지가 아니라 얇은 갈색의 이탈리안 소시지였다. 계란은 주문한 그대로, 노른자가 익혀지지 않은 서니사이드업으로 나왔다. 정말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아이가 걸음마를 걷듯이, 나는 자연스럽게 계란 노른자를 터뜨려서 그것에 베이컨을 찍어먹었다. 히히.

내 얼굴만 한 팬케익. 저 하얀 식은 윕트버터로 팬케익에 더 잘 스며든다

결국 나는 남편 말대로 다 먹기는커녕 반도 못 먹고 투고 박스에 남은 베이컨, 소시지, 그리고 팬케익 세 장중 두 장을 넣었다고 한다. 시아버님 말로는 이렇게 먹고 농장일 안 하면 큰일 난다고 하셨다. 거의 삼천 칼로리는 되는 아침식사 다 보니까 요즘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예전에는 농장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니, 이렇게 아침 식사를 거하게 하고 농장에서 힘쓰는 일을 많이 해야 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시아버님의 부모님이 아침식사로 무엇을 차려주시곤 했는지 이야기해 주셨다. 나도 한국에 이런 문화가 있다고 말씀드렸다. ‘새참'으로 우리는 농사일할 때 먹는 간식을 먹고 막걸리 한 잔도 하곤 한다고 말씀드리니 ‘여기는 위스키ㅋ'라며 허허 웃으셨다.

그레이비소스에 찍어먹는 비스킷 앤 그레이비... 혈관 막히기 전에 농장일하러 가야 함

미국엔 정말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아메리칸 브렉퍼스트가 모든 미국사람들의 아침식사는 절대로 아니다. 우리 남편만 해도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는커녕 아침으로 된장국 끓여달라고 말한다.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는 아주 옛날 미국의 초기 정착 시절부터 이어져온 주로 백인 문화가 아닐까 싶긴 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미국 문화로 자리 잡혀있는 이유는 아마 시부모님과 처음으로 연결해 준 ‘식사'여서 그랬던 것 같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소통하고 밥에 대해 알아가며 다른 나라를 알아가고.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로 나의 아메리칸 패밀리를 알아갔으니, 미국아침식사야말로 나에게 아메리칸 문화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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