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sther Schipper Feb 08. 2023

Ceal Floyer

실 플로이어 개인전


에스더쉬퍼는 실 플로이어(Ceal Floyer)의 여섯 번째 개인전을 2022년 12월 10일부터 2023년 2월 4일까지 에스더쉬퍼 파리에서 선보입니다. 실 플로이어의 작품은 우리가 매일의 일상에서 접하는 익숙한 오브제나 이미지들에 약간의 변형을 가하여,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낯설게 하고, 다시 보게끔 하는 것을 특징으로 합니다. 다시 말해서, 작가의 작품 세계는 일상의 시각적, 언어적 레퍼런스들을 심오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비틀고 해석함으로써, 그것의 보편적 의미 체계를 해체하고, 그로부터 새로운 의미 체계로 확장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패러독스, 즉 ‘깃털같이 가벼운 진지함(feather-light gravitas)’이라 표현할 수 있는 역설적 조건들은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Saw, 2015, blade, acrylic, chalk marker, dimensions variable.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Saw>(2015)는 이러한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패러독스를 잘 보여주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전시 공간의 바닥에는 톱날이 돌출되어 있고, 그것을 따라 이 톱이 구멍을 냈다고 암시하듯 원형 자국이 그어져 있습니다. 실 플로이어의 이러한 장난스러운 제스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면(ground)은 항상 존재한다’라는 건축적 자명함에 균열을 일으킵니다.


Saw, 2015, blade, acrylic, chalk marker, dimensions variable.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이와 비슷하게 공간에 대한 개입을 유도하는 작업으로 <Untitled Installation (Dotted Line)>(1993-2022)을 볼 수 있습니다. 작가는 종이나 바느질 패턴에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점선을 따라 자르시오(cut-here)”의 점선을 전시 공간 벽에 설치합니다. 이 작품은 공간의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조정되고 수정될 수 있는 장소 특정적 설치 작품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가위 이미지가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까지 함께 설치함으로써 “잘라내기”의 의미를 한층 더 강화했습니다. <Untitled Installation (Dotted Line)>을 통해 전시장의 흰 벽은 더 이상 작품의 배경으로서 망각되는 존재가 아니라, 점선을 따라 가위로 잘라내야 할 다른 어떤 존재로 유쾌하게 미끄러지며, 관객은 기존 공간에 대한 인식을 확장하는 계기를 얻습니다.


Untitled Installation (Dotted Line), 1993-2022.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Untitled Installation (Dotted Line), 1993-2022.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Untitled Installation (Dotted Line), 1993-2022.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Hinges, 2021.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공간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이해를 뒤엎는 또 다른 작업은 <Hinges>(2021)입니다. <Hinges>는 우리말로 경첩을 의미합니다. 경첩은 주로 여닫는 기능을 가진 사물에 달린 것으로, 문짝이나, 옷장, 창문 등에 쓰입니다. 실 플로이어는 경첩을 전시 공간의 서로 인접한 벽 모서리에 설치함으로써, 마치 두 벽이 움직일 수 있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엉뚱하고 장난스러운 이 작품은 우리가 주변을 인식하는 방식 또는 주변에 대해 기존에 갖고 있던 인상을 초현실적으로 변환시킵니다.


Drop, 2013, HD video, silent, duration 11:18 min (looped).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Left: Hinges, 2021. Right: Drop, 2013.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한편, 작가는 앞서 살펴본 장소 특정적인 설치 작업뿐만 아니라, 영상과 음향을 매체로 작업하기도 했습니다. 영상 작업인 <DROP>(2013)은 적막한 저녁 하늘을 배경으로, 레일에 매달린 물방울들의 움직임을 11분 18초 동안 보여줍니다. 이 영상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맺혀있는 물방울들과 떨어진 물방울, 새롭게 고인 물방울의 움직임, 그리고 미묘하게 변화하는 하늘의 빛깔을 볼 수 있습니다. 11분 18초 동안 극도로 느리고 미묘하게 운동하는 이미지를 바라보게 하는 이 작품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바라보는 자신의 행위 자체를 인식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영상 앞에 서 있는 관객은 영상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을 새삼스럽게 인식함으로써, 그동안 너무나 당연하게 작동하고 있었던 보는 행위 자체에 대한 낯섦을 갖게 됩니다.


음향 조각인 <Untitled (Static)>(2018) 역시 친숙한 인식을 예상치 못한 경험으로 전환하는 작업입니다. 천장에 매달린 투명한 포물선 모양의 스피커는 백색 소음을 재생합니다. 그리고 이내 이 투명한 스피커가 마치 우산이 된 것처럼, 폭우가 내리는 소음의 패턴으로 변환하면서 환영적 효과(trompe-l’oeil)를 유발합니다.


Untitled (Static), 2018.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Wall: Umbrella, 2018. Desk: Newton’s Cradle, 2017.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마치 <Untitled (Static)>와 짝꿍인 것 같은 <Umbrella>(2018)는 회색 콘크리트 바닥에 거꾸로 펼쳐져 있는 검은 우산을 묘사한 사진 작품입니다. 약간 기울어져 있는 우산의 오목한 부분에 물이 차 있고, 수면은 바닥과 수평을 이룹니다. 하늘로부터 비를 막는 볼록한 방패로서의 우산은, 이 작품에서 뒤집어지면서 비를 받아내는 수용 용기로 기능이 변형되었습니다. 또한 실내에서 어떻게 우산 안에 물이 차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게 하는 이 작품은 다시 한번  보편적 인식에 대한 난제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실 플로이어는 전시에서 <NEWTON’S CRADLE>(2017), <Press>(2014), <JIGSAW>(2022) 등의 작품들도 선보이고 있는데요,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오브제의 단순한 재배열을 사용하여, 건축, 빛, 부피, 깊이, 물질성 등 일상적인 현상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유발하는 “국면 전환 switch situation”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국면 전환” 전략은 우리가 간과하고 망각하기 쉬운 일상의 작동 기제를 늘 의식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새로운 세계로 확장하는 유쾌한 경험으로 이끌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실 플로이어가 작업 전반에서 다루고 있는  레디메이드적 요소 그리고 의미와 기호(sign) 사이의 놀이(game)는 작가의 작업이 뒤샹적 전통 안에서 해석될 수 있고, 또한 작품이 갖는 장소 특정적인 특성과 미니멀한 시각적 형태, 다양한 매체와 소재의 사용은 미니멀리즘의 맥락 안에서도 논의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Newton’s Cradle, 2017, Newton’s cradle, plinth, 140 x 14 x 14 cm (overall).


Jigsaw, 2022, graphite on paper, 20 x 20 cm.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Press, 2014, Plexiglas and newsprint, 75 x 60 x 4 cm. Esther Schipper, Paris (2022-23)


글쓴이: 이채원 (Digital Humanities, University of Cologne)


Photos: 

© Andrea Rossetti 

© Hugo Glendinning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