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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겨울 Sep 09. 2022

50분 25만원

첫 번째 상담

 

고민 상담해주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질문했다.

나는 지금이 힘든 건데

“ 당신의 유년시절은 어땠나요?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라고 물었다.

지금이 힘든데 왜 과거를 묻지?

지금이 힘든데 왜 부모님을 묻지?

나는 그런 상담가들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봤다.

저거 또 똑같은 스토리텔링이네라고.

그래서일까?

심리상담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나는 6년째 고질적인 문제를 갖고 있고

심할 때는 극단적 사고(생각)가 끊이지 않고 있다.

오랜 주치의 선생님은 나에게 고비용의 상담치료를 권했고 긴 고민 끝에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다른 센터(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50분에 25만 원 이동시간 왕복 4시간

2주에 한 번이면 부담이 덜 할 텐데

매주가 아니면 내담자에 대한 정확한 진료가 어렵다는 교수님.

뭐가 다른지 궁금하기도 하고

일단 생활이 힘드니까 선택의 여지없이 상담을 시작하기로 했다.


제법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요하는 만큼

행복한 생활을 위해 치료하고 그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자 기록을 시작한다.


본인을 소개해 보라는 선생님.

음.. 나라는 사람은?


35세 여성.

9살 나이 차이가 나는 남편과

초등 자녀가 한 명 있음.

현재 가정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

오로지 내 안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됨.

2017년부터 정신건강의학과를 내원하고 있음.


-현재 고민은?

나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극단적 사고로 이어지는 문제를 갖고 있다.

오전에 사소한 것으로 행복하고

오후에 사소한 것으로 불행해지는

이 생각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다.

예를 들면 최근에 새로 이사 온 윗집의 층간소음으로 인해 심장이 너무 뛰고

이 세상을 진심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층간소음은 윗집이 내는데 내가 죽고 싶다고?

그렇게 사소한 문제가 날 힘들게 하고 있다.


- 처음 정신건강의학과를 찾게 된 이유는?

2017년 엄마가 돌아가시면서 극심한 우울감이 시작됐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눈물이 많이 나서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상태가 심각할 때는 입원 치료도 권유받았지만 돌봄이 필요한 유치원 자녀로 인해 입원을 포기했고 대신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서울대병원으로 치료를 다녔지만 그곳의 시스템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동네 정신의학과 선생님을 찾았다.


역시나 과거 유년시절은 어땠는지 물어보시는 선생님.

일단 내가 가진 ‘유년시절 질문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을 설명했다.

유년시절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 부모님과의 정서적 유대감으로 현재의 내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여기부터 폭풍 눈물의 시작.


-우울한 생각은 언제부터였나?

극단적 생각은 중고등학생부터였다.


-부모님과의 사이는 어땠나?

나에게는 위로 7살 9살 나이차이가나는 언니가 둘 있고 아래로 8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남아선호 사상이 심한 가정이었고

셋째인 내가 남자였다면 그것으로 자녀계획이 끝이었을 텐데 내가 딸이라서 남동생을 또 낳게 됐다. 그것이 나가 내 자신을 소중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몰고 있다는 것.

엄마와 유대감은 없었고

사랑받은 기억이 없는 편이다.

편집적으로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언니들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원래 무뚝뚝한 성격이라고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자녀로서 느끼는 감정의 선이 사랑이라는 것이 없었다.

그런 엄마였지만 장례를 치르고 나니 그리운 감정이 생기고 다시 한번만 만나게 된다면 제발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아빠에 대해서는?

엄마가 돌아가신 해에 아빠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 평생 자신의 그릇을 모르고 헛된 사업만 해서 엄마를 고생시켰다.

언니 둘이 고등학생 때 까지는 아빠의 사업이 잘 됐다.

우리 집 앞에는 덮개가 씌워진 그랜저가 있었고 풍족했다.

풍족했음에도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은, 무언가를 한 기억이 전혀 없다.

풍족한 것도 잠시였고 IMF 때 보증을 잘 못선 아빠로 인해 티브이에서나 볼법한 빨간딱지 붙이는 사람들이 우리 집으로 달려들어 왔다.

그 기억이 선명하다.

가세는 기울고 집에는 애가 넷.

넷을 먹이고 입히고 학교 보내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나는 가난하면서 애만 많이 낳은 사람들을 혐오하게 됐다.

많이 배우지 못하신 부모님은 할 수 있는 것이 몸을 쓰는 힘든 일밖에 없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에 트럭을 세우고 매일 3만 원의 세를 내면서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채소와 과일을 팔았다.

엄마에게는 그 힘든 일을 시키면서도

아빠는 늘 자리를 비웠다.

자신이 여기서 대파나 다듬고 있어야 하냐면서 말도 안 되는 비즈니스를 한다는 이유로 트럭에 아빠는 없었다.

엄마는 남편 없이 억척스럽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장사를 했다.

그렇다 할 소득이 없는 남편으로 인해 엄마는 쉬지 않았다.

배달할 사람이 필요할 때는 전화로 우리들을 불렀다.

둘째 언니는 등록금이 없어 전문대학으로 진학했고 빨리 돈을 벌기 위해 빠른 취직을 했다.

큰언니는 대학 여름방학 때 온종일 엄마를 도와 가게에서 일을 했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대단하게 배달을 다녔다.

중학생이던 나는 고등학생 때까지 정말 진심으로 배달하는 게 싫었다.

나에게는 창피함이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를 배달하는 것이 나에게는 치욕스러웠다.

누군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 신경 쓰여 아파트 입구에 있는 우리 가게를 피해 돌아서 집으로 갔다. 엄마에게 배달 전화가 올까 봐 마음 졸였고 넉넉하지 않은 우리 집이 싫었고 먹고 싶은 간식도 먹을 수 없음에 눈치가 보였다.

이 과정을 설명하는데 선생님께서

내 문제를 짚어 내셨다.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성향으로 만들어진 건 내 어린 시절에 있었다.

유년시절에 만들어진 내 문제를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티브이 상담소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내 얘기라는 걸 깨닫지 못하고

그저 스토리텔링으로 치부했던 거다.


- 그 이후는요?

대학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과톱 수석으로 졸업했다.

어느 대학이든 수석으로 졸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작은 칭찬을 더해주셔서

상담하는 동안 내 마음이 더 열린 것 같다.

등록금을 버는 등 엄마는 그때 나를 칭찬했고 칭찬이 고팠던 나는 나를 더 채찍질했다.

주변을 많이 의식하는 나는 나를 알보는 사람이 있으면 공부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우리 과 학우들은 삼삼오오 모여 공부를 했는데 나는 그 무거운 전공책들을 이고 지고 다니며 먼 곳에서 공부했다.

내가 왜 그렇게 해야만 공부를 할 수 있었는지 이번 상담을 통해서 알게 됐다.

지금의 내 성향이 완성된 것을 6년간 다닌 동네 정신의학과와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에서는 깨닫지 못했는데 상담센터를 통해 알게 됐다.

그로 인해 주변을 많이 의식하고

윗집의 생활소음도 많이 의식하고

많이 억누름으로 폭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빠처럼 무능력한 상태를 혐오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는 순간을 견딜 수 없는 성인이 됐다.

이것은 또 완벽주의자로 이어졌다.

겁나 피곤한 성격의 완성.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대기업에 취직했는데 집으로부터 도피하고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를 낳은 엄마들은 알 것이다. 친정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바쁜 친정엄마에게 투정할 수도 없이 매일 남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육아를 했다.

지금은 아이도 잘 자라주었고

남편도 더없이 나에게 잘해주어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몇 가지 깨달음을 얻은 상태에서 50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왕복 4시간이라는 시간과 적지 않은 상담비용이 괜찮으냐고 물으셨고

무언가를 시작할 때 기대감이 높은 편 같은데

내가 투자를 이만큼 했는데 너는 이만큼밖에 안 해주네?라는 실망감을 가지면 힘들 것이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첫 번째 상담이 만족스러웠고

다른 수단이 없어서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다음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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