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번 주 화요일부터 "토요일에 이마트 갈 거야. 치즈 50프로 세일한데."라고 선전포고를 하더니, 토요일 눈뜨자마자 빨리 마트를 가자고 성화다. 치즈는 피자에 올라간 모차렐라 치즈밖에 먹어본 적 없는 사람이 갑자기 웬 치즈? 인가 싶어 물어보니 "자기가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할인하는 거 있나 찾아봤지."란다.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었나 싶어 기억을 더듬어본다.
몇 주 전 세계 테마 기행에 치즈가 나왔고 그걸 보고 "와, 저 치즈 먹어보고 싶다."라고 말했던 게 생각났다. 일단 맛있게 먹는 걸 보면 먹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라 입 밖으로 꺼냈는데 그걸 또 기억하고 있었구나 싶다. 내가 말조심을 했어야 했는데... 후회는 늦었다.
남편은 옷을 갈아 입고 차 키를 챙긴다. 그리고 내게 서두르라는 제스처를 보낸다. 그렇게 마트에서 6만 원 치의 치즈를 사서 집으로 왔다. 치즈의 ㅊ도모르는 우리는 전형적인 제리의 치즈는 사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랬나, 구입한 치즈의 80퍼센트가 맛있다. 집에 있는 양주에 소시지+치즈를 먹곤 눈이 번쩍 한다. "오~ 맛있는데.", "치즈가 내 취향이었나 봐" 거의 동시에 긍정적인 말이 튀어나온다.
그러고 보면 '내 취향'을 탐닉하고 알게 된 건 35년 인생 중 얼마 되지 않았구나 싶다. 그것도 결혼 후 10년 동안 온전한 내 취향을 탐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취향 탐닉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처럼 커피로 시작됐다. 믹스커피도 입에 되지 않던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남편이 뜬금없이 캡슐 머신을 사자고 말한 것에서부터 커피사랑이 시작됐다. 저가 캡슐머신에서 시작해 자동머신을 거치며 8년 동안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 지금은 생두를 구입해 취향에 맞게 로스팅해서 먹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다. 커피를 마시니 당연히 차와 와인도 즐기게 됐다. 차는 주로 직구로 구입한다. 그러고 보니 직구에 처음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도 '홍차'였다. 차를 좋아하고 자주 마시다 보니 이젠 맛을 보고 고급인지 아닌지 까지 알 정도다. 와인은 처음엔 당도 최대치의 화이트 와인 또는 로제 와인을 선호하는 줄 알았는데 마시면서 내가 의외로 오크향이 진한 레드와인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다.
요즘엔 오일에 까지 손을 댔다. 얼마 전 오일을 직구로 4병을 구입해놓고 아침마다 한 숟갈씩 먹고 샐러드드레싱으로도 잘 먹고 있는데 이제 치즈까지 즐기게 돼버렸다. 거기에 남편은 발사믹 식초 직구를 해야겠다며 벼르고 있다. 취향을 찾고 탐닉하는 건 좋지만 백수인 우리 사정을 고려한다면 달갑지 만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제 텅 텅 비어 가는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이쯤에서 멈춰야 할 텐데 남편이 "치즈에 어울리는 와인을 주문했어"란다. 당장 "안돼"라고 말해야 하는데 "어떤 건데?"라고 묻고 있다. 이러다 내년엔 둘 중 하나는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