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의 시「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에는 이런 시구가 나온다. “그들은 어엿한 장년 중년 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모이 물어다 먹이는 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고독해 보인다.” 인간은 일생의 대부분을 먹고사는 일로 바쁘게 지낸다. 그러나 동물과 인간은 지적인 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생존을 위해서만 살지 않는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탐구를 하는 지적능력 즉 ‘실존’ 지능도 있는 것이다. 인간의 교육은 이러한 ‘실존적’ 지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단지 생존(‘성공’)을 위한 입시공부는 어느 정도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지겨운’ 것이 될 수 있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누구나 ‘나는 누구인가?’ 같은 실존적 의문을 가지며 ‘살아야할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고민을 한다. 이러한 ‘실존적인’ 의문에 답하지 않는 교육은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과 단지 먹고살고자 또는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큰 차이가 난다.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환경 안팎에서 작용하는 힘을 규정하고 설명하려고 하며, 최소한 그 힘과 효과를 예측하여 가능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애쓴다. 따라서 이해하려는 탐색은 인간의 근본특질로 진화했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이유와 방향에 대해 답을 가져야만 한다. 인간의 뇌는 모호함과 불확실성을 싫어하고, 분명하고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모호하고 불확실한 것을 줄이기 위해 관련 정보를 꾸준히 얻고 책을 읽는 것 같다. 이런 능력을 최대로 키우는 가운데, 인간은 세계의 다양한 요소들을 설명하고 연관 짓고 세계와 세계 속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해줄 일련의 해석적인 ‘이야기’, 즉 포괄적인 해석의 틀을 가지려는 깊은 감정적 욕구를 갖게 되었다. 인간은 우주 인식의 지도와 우주 조정 지침서를 필요로 한다. 그것들이 미지의 영역을 축소시켜 일종이 안정감을 심어주고 두려움을 조절하고 완화해주며 고통과 고민을 덜어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답이 자신의 지평을 넘어서거나 경험을 초월할 때면, 인간은 사색이나 ‘신화화’로 틈새를 메운다.
사색과 신화는 상상력의 산물이다. 오랜 진화를 거치며 사피엔스는 지적능력과 상상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상상력은 세계를 탐구하고 인간문명을 발전시키는 동인이 되었다. 특히 가상의 세계를 상상하고 이를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만의 고유 능력이다. 아이들은 두 살 무렵이면 소꿉장난 같은 가상 놀이를 할 수 있다. 그러나 2026년 연구에 의하면 유인원(보노보)도 존재하지 않는 물체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가상 놀이(pretend play)를 할 수 있다. 상상력의 기원이 600만~900만 년 전 인간과 유인원의 공통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오랫동안 인간의 고유 능력으로 여겨져 온 상상력이 인간만의 고유 능력이 아니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물론 유인원과 인간이 가진 상상력은 차이가 있다.
https://www.science.org/doi/10.1126/science.adz07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