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수용 Sep 08. 2021

풋볼 레전드 스토리 1편

그란데 인테르의 설계자 루이스 수아레스

서문


현세대 축구팬들에게 스페인을 대표하는 공격형 미드필더에 대해 이야기하면 보통 안드레스 이니에스타나 다비드 실바를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스페인 대표팀의 황금기를 이끌었으며 자신의 소속팀에서도 레전드로 통했던 선수였다.

그러나 정작 스페인 태생으로 발롱도르를 받은 선수는 그들이 아닌 오늘 소개할 선수다. 물론 디 스테파노도 스페인 국적으로 받긴 했지만 그는 아르헨티나 태생이다.

이 선수는 건축가, 설계자라 불리는 훌륭한 플레이메이커로 1960년대를 풍미한 스페인 국적의 선수지만 동시에 인터 밀란의 황금기를 이끈 당시로서는 독특한 커리어를 보내기도 했으며 스페인 역사상 최초의 국제 대회 우승컵을 들기도 했다.

오늘 소개할 이 선수는 바로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다.


프로필


사진 출처: 법정스님의 소유


선수이름: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

출생일: 1935년 5월 2일

국적: 스페인

신체조건: 키 175cm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커리어


수아레스는 갈라시아 출생으로 지역 연고팀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데뷔 시즌의 활약으로 스페인 최고의 유망주로 명성을 떨쳤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1954-55 시즌에 바르셀로나 B팀의 전신인 에스파냐 인두스트리알에서 활약했으며 1955-56 시즌을 앞두고 바르셀로나 1군 팀에 합류한다.

당시 바르셀로나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영입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밀려난 이후 라 리가의 패권을 레알 마드리드에게 내준 상황이었으며 수아레스 영입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려고 했다.

수아레스는 라슬로 쿠발라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이끌었다. 라 리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쳐 1957년에는 스페인 대표팀에도 소집되었으며 1958-59 시즌을 앞두고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전성기를 이끈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이 부임했으며 에레라 체제에서 수아레스는 준수한 공격형 미드필더를 넘어 세계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수아레스는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바르셀로나는 라 리가 2연패를 이끌었으며 두 번의 인터시티 페이스 컵에서도 우승한다. 그리고 수아레스는 1959-60 시즌에 라 리가와 인터시티 페이스 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발롱도르를 수상한다. 하지만 은사 에레라 감독이 핵심 선수 라슬로 쿠발라와의 갈등으로 팀을 떠나 이탈리아의 인터 밀란으로 갔으며 수아레스도 1960-61 시즌이 끝난 뒤 에레라의 부름을 받고 인터 밀란에 합류한다.


발롱도르를 수상받는 루이스 수아레스 (사진 출처: futbolretro.es)


에레라와 수아레스는 처음에는 스페인과는 다른 방식의 축구를 하는 이탈리아 무대에서 고전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탈리아 세리에에 맞게 진화했다. 공격 축구를 추구하는 에레라는 카테나치오를 받아들였으며 수아레스는 넓은 시야와 당대 최고의 롱 패스 능력을 앞세워 수비형 미드필더와 공격형 미드필더의 연결고리 역할인 일명 레지스타를 맡았다.

수아레스가 이끌었던 인테르는 유럽 최초의 공격형 풀백 파케티, 훌륭한 수비 커버 능력을 가진 리베로 피키, 유럽 최초의 수비형 윙어로 토르난테라 불렸던 자이르 다 코스타, 그리고 예전보다 아래로 내려간 수아레스 대신 전방에서 찬스 메이킹을 주도한 산드로 마촐라를 앞세워 1962-63 시즌, 밀란과 유벤투스를 따돌리고 세리에 A 우승에 성공한다.

이후 스페인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유로의 전신 대회인 1964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에 참가한다. 아만시오 아마로, 추스 페레다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헝가리를 제압하고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는 초대 우승팀이자 디펜딩 챔피언 소련을 만나 승리하며 우승에 기여한다. 그리고 수아레스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었으며 1964년 발롱도르 투표에서 데니스 로에 이어 2위를 차지한다.


수아레스의 은사 엘레니오 에레라와 함께 (사진출처: institutofutbol.com)


그리고 다음 시즌에는 비록 볼로냐에 밀려 리그 우승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 디 스테파노와 푸스카스를 앞세운 레알 마드리드를 잡아냈으며 1964-65 시즌에는 세리에 A 무대 제패를 이뤄냈으며 유러피언 컵에서도 3회 우승을 노리던 에우제비우의 벤피카를 잡으며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한다. 벤피카의 중원과 수비 라인은 수아레스의 창의적인 롱 패스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으며 에이스 에우제비우는 바위라 불렸던 부르니치의 대인 마킹에 고전했다. 인터 밀란은 유럽의 두 왕들을 잡고 자신의 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수아레스는 1965년에도 발롱도르 투표에서 3위를 기록하며 유럽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당당히 입증했다.


카테나치오 체제의 1964-65 인터 밀란, 세리에와 챔스를 평정하다.


수아레스는 인테르에서 1965-66 시즌에 또다시 세리에를 우승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려움이 찾아왔다.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는 독일과 아르헨티나에 밀려서 조별 예선에서 탈락하는 굴욕을 겪었으며 1966-67 시즌은 리그에서는 숙적 유벤투스에게 승점 1점 차이로 우승을 내줬으며 코파 이탈리아에서도 4강에서 약체 파도바에게 밀려 탈락했다. 마지막 남은 유러피언 컵 결승에서도 셀틱에게 패하며 셀틱 트레블의 제물이 되며 준우승을 거두며 무관으로 시즌을 마친다.

이후 수아레스는 노쇠화되며 예전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했고 1970년에 인터 밀란을 떠나 삼프도리아에서 3년간 활약하며 선수 생활을 마감한다.


클럽

1953-1954 데포르티보 라 코루냐: 17경기 3골
1954-1955 에스파냐 인두스트리알: 21경기 6골
1955-1961 바르셀로나: 176경기 81골
1961-1970 인터 밀란: 333경기 55골
1970-1973 삼프도리아: 73경기 13골

클럽 통산: 620경기 158골

국가대표팀

1957-1972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32경기 14골


플레이 스타일


팀의 플레이를 완벽하게 설계하는 건축가


루이스 수아레스 미라몬테스는 건축가라는 별명으로 불렸는데 드넓은 시야와 정확한 숏 패스, 그리고 창의적이면서도 정확한 롱 패스를 활용해 팀의 볼 전개를 도맡아서 하며 팀의 플레이메이커로 활약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라 리가에서 뛰던 시절에는 오늘날의 공격형 미드필더나 처진 스트라이커와 같은 인사이드 포워드로 뛰었으며 이 때는 두 경기 당 한 골은 넣는 훌륭한 득점력과 감각적인 원 터치 플레이를 보여줬다.

그리고 인터 밀란 시절에는 카테나치오 시스템에서 파케티와 함께 수비에서 공격으로 볼을 전환하는 역할을 맡았다. 파케티는 측면에서 직접 공을 몰고 나가는 오버래핑을 한다면 그는 중앙에서 수비형 미드필더와 트레콰르티스타 가운데에서 활약하며 흔히 말하는 레지스타로 활약했다.

레지스타로 활약했던 인테르 시절에는 골문을 직접 타격하는 일은 줄었지만 효율적인 공간 활용과 적절한 패스로 경기장 전체를 자신의 뜻대로 설계하며 찰튼, 리베라, 로차와 함께 당대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로 명성을 떨쳤다.


여담


이후 친정팀 인터 밀란과 삼프도리아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여러 팀에서 감독을 맡았지만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진 못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스페인 감독으로 나와 조별 리그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3-1로 이겼으나 16강에서 탈락했다.

1963년 3월 10일에 제노아를 상대로 스페인 선수로는 최초로 세리에 A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후 50여 년 만에 AC 밀란의 수소가 제노아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세리에 A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두 번째 스페인 선수가 되었다.

이름이 같은 우루과이 출신의 정상급 스트라이커 루이스 수아레스와의 에피소드도 유명하다. 그가 프리미어리그에서 더티 플레이와 다이빙으로 유명했을 때는 같이 엮이는걸 굉장히 싫어하며 불쾌해했으나 이후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자 그를 인정했다.


수상 이력


FC 바르셀로나

1957 코파 델 레이 우승
1958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
1958-59 라 리가 우승
1958-59 코파 델 레이 우승
1959-60 라 리가 우승
1960 인터시티 페어스 컵 우승


인터 밀란

1962-63 세리에 A 우승
1963-64 유러피언 컵 우승
1964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4-65 세리에 A 우승
1964-65 유러피언 컵 우승
1965 인터콘티넨탈컵 우승
1965-66 세리에 A 우승



1964-65 시즌 유러피언 컵 우승. 맨 앞이 루이스 수아레스다. (사진 출처: 위키백과)

스페인 국가대표팀

1962 칠레 월드컵 16강 조별 리그
1964 유퍼리언 네이션스 컵 우승
1966 잉글랜드 월드컵 16강 조별 리그


1964 유러피언 네이션스컵 우승팀.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루이스 수아레스다. (사진출처: pesmitidelcalcio.com)

개인 수상

1958 발롱도르 14위
1959 발롱도르 4위
1960 발롱도르 1위
1961 발롱도르 2위
1962 발롱도르 15위
1963 발롱도르 8위
1963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64 유퍼리언 네이션스 컵 대회 베스트 일레븐
1964 발롱도르 2위
1964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1965 발롱도르 3위
1965 월드 사커지 선정 월드 일레븐
2001 스페인 왕립 체육훈장 금메달
2008 골든풋
2016 마르카 레전드


발롱도르를 수상받는 루이스 수아레스 (사진 출처: 발롱도르 공홈)

옛날 축구 용어 해설


유러피언 컵: UEFA 챔피언스리그의 전신 대회다. 1992-93 시즌부터 오늘날의 UEFA 챔피언스리그로 바뀌었다.

인터시티 페이스 컵: 유로파 리그의 전신 대회로 알려졌지만 공인받지는 못했다. 1955년부터 1971년까지 열렸다.

유러피언 네이션스 컵: 유로의 전신 대회다. 1960년과 1964년까진 이 명칭으로 쓰다가 1968년부터 UEFA 유로라는 명칭을 썼다.

인사이드 포워드: 오늘날의 처진 스트라이커나 공격형 미드필더에 위치하며 팀의 공격을 이끌면서 상대 하프 스페이스를 공략한다. 위치에 따라 인사이드 라이트, 인사이드 레프트로 불리기도 한다.


블로그 박수용의 토르난테 관리자
페이스북 페이지 동네 축덕 아저씨의 축구 썰 관리자
페이스북 Futball Creator United 회장
다음카카오 브런치 작가

박 수용

작가의 이전글 [역대 UEFA Euro Champion 리뷰] 5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