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찍한 통로지만, 들어갈 수 없다. 구비 돌아 오르막을 걸어야 한다. 출입구도 그곳과 달리 좁다. 불편을 감수할 이유를 모르겠다. 단 하나 있다면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다. 전체 가구 절발 이상(2019년 51.1%)이 아파트에 산다. 아파트가 '내 집 마련'의 종착역이 됐다. 국민 절반인 2600만 명이 청약 통장에 가입했다. 현재 아파트는 사회 계급처럼 여긴다. 임대, 분양, 주상복합 등으로 계급화된 계층적 폐쇄성을 띠기 때문이다.
철 없는 아이도 OO 아파트 OO평에 산다 자랑한다. 또한 다른 아이를 임대아파트에 산다고 놀린다. 누가 아이들에게 이런 인식을 심어준 것인가. 프랑스 학자 줄레조는 "한국의 아파트는 가격으로 평가되는 상품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나라 가계 순자산에서 부동산 비중은 76%나 된다. 예전에는 부모나 당사자의 직업으로 사회경제적 지위를 예측했다. 지금은 어느 아파트에 사는지가 대신 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아파트 브랜드와 와 평수에 따라 서열이 생긴다는 씁씁한 이야기도 있다. 지난해 12월 18일 세종시의 한 아파트 승강기 게시판에는 '2021년 ㅇ초등학교 학군조정 문제'라는 게시글이 붙었다. 해당 글은 세종시교육청이 해당 아파트 일대의 학군을 조정하는 행정 예고를 발표하면서 인근 초등학교 학군에 임대아파트가 포함되자 이를 반대하는 뜻을 오으자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특히 해당 글에는 '임대아파트가 포함된 학군으로 분류되어 아파트 이미지 저하가 우려됨'이라는 문구를 강조하면서 임대아파트 거주자를 차별했다.
서울 마포구의 29층짜리 한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는 4층부터 10층까지는 임대 세대가 거주하고 11층부터 일반분양 세대다. 임대 주민과 일반 분양 주민이 사용하는 승강기도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은 물론 10층과 11층도 이어져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임대 세대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옥상으로 대피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2020년 9월부터 수도권 재개발 단지 임대주택 의무 공급비율 상한선이 30%로 높아졌다. 그러나 임대 거주 세대를 무시하는 인식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차별 문제 또한 이어질 우려가 적잖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