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지 못한 날에도, 밥을 짓는 사람

칭찬 한마디 없는 삶 속에서도, 사랑은 계속된다.

by 혜다온

오늘 아침, 떡국을 끓이려 했다.

쿠팡 박스를 열었는데, 떡국떡이 아니라 떡볶이 떡이 들어 있었다.

순간 멍했지만,

이상하게 손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나는 또 밥을 지었다.

냉장고에 있는 재료로, 감자 된장국을 끓이고,

메추리알 조림을 만들고,

깍두기도 어제 밤에 새로 담가 두었다.

아무도 몰라도,

이 일상의 흐름은 나를 움직이게 한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이렇게 바쁜 손끝에서 피어난다.

누군가를 위해 국을 끓이는 일,

그건 사실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

식탁에 밥을 올렸을 때,

나는 잠시라도 따뜻한 눈빛을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말했다.

“밥이 너무 많네.”

그는 덜어냈고, 국은 한 숟갈만 떠먹었다.

깍두기 뚜껑은 열리지도 않았다.

그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게 더 아팠다.

익숙한 무표정 속에서

나는 천천히 깨달았다.

이 집 안의 침묵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서로의 피로가 쌓여 만들어진 벽일 수도 있다는 걸.


익숙해진 무감각

살다 보면,

미움보다 더 깊은 게 있다.

그건 ‘익숙함’이다.

칭찬받지 못하는 일에 익숙해지고,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척 하게 되고,

이제는 누가 내 마음을 몰라도

그냥 그러려니 하게 된다.

사람은, 상처보다 익숙함에 길든다.

익숙함이 주는 평온 속에서

천천히 무뎌지고,

그 무뎌짐이 삶을 버티게 한다.


그래도 밥을 짓는 이유

그런데 이상하다.

그렇게 마음이 식은 날에도,

나는 여전히 밥을 짓는다.

누가 고맙다고 말하지 않아도,

누가 먹어주지 않아도,

그냥 밥을 짓는다.

그게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 같아서.

가스불 위에 놓인 냄비가 보글거릴 때마다

나는 다시 마음을 덥힌다.

익숙한 냄새가 부엌을 채우면

조용히 이렇게 생각한다.

‘그래, 이건 아직 내 삶의 온기야.’

사랑은 알아주는 사람보다

짓는 사람에게 먼저 피어난다.


사랑받지 못한 날에도

사랑받지 못한 날에도 밥을 짓는다는 건,

아직 세상을 믿는 마음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불 앞에 선다는 건,

삶 앞에 선다는 일이다.

오늘도 나는 불을 켠다.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그 불빛이 꺼지지 않도록,

내 안의 따뜻함이 식지 않도록.

사람은 누구나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사랑받지 못한 날에도 사랑을 짓는 마음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