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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Dec 31. 2021

한국 직원들은 왜 손님들을 졸졸 따라다니는 거예요?

왜냐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거든

오늘은 다른 선생님을 대신해서 어휘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주제는 ‘도시 생활’. 도시와 관련된 어휘와 표현에 대해 배웠다. 다양한 편의시설, 붐비는 대중교통, 네온사인 간판 등 도시를 설명할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을 제시하고 학생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해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한국의 단면을, 해외에서 온 외국인 학생들은 다르게 본다. 그것을 좋게 보기도 하고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수업의 흐름이 끊기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spontaneous 한, 즉흥적으로 나오는 토론 주제들이 좋다.


오늘 나눈 이야기 중 가장 재미있었던 주제는 한국의 가게에 가면 직원들이 손님을 쫄쫄 따라다닌다는 것이었다. 모든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주제라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뭔가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서 한국인으로서 나의 의견을 말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에서 가게에 들어갔을 때 직원이 따라붙어 다니면서 설명해주려고 하지 않으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무시를 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이걸 불편해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직원이 자신의 쇼핑을 도와주길 원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손님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일단 다가가 보는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 엄마가 운영하는 옷가게에서 일을 한다. 내가 매장을 지킬 때 손님들이 매장에 들어오면 난 인사만 하고 내 자리를 지키는 편이다. 그럼 엄마는 내게 손님에게 다가가서 옷을 설명하고 손님을 봐주라며 내 등을 떠민다. 나는 아직 손님이 옷 가게를 다 구경하지도 않았는데 다가가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당황스럽기만 하다. 일단 엄마 말을 듣고 다가가면 절반은 아무렇지 않아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부담스러워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도착하기도 전에 만지작거리던 옷을 내려놓고 도망가기도 한다.


살 마음은 없지만, 구경은하고 싶은 그 마음을 나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나는 웬만하면 손님이 나를 찾기 전까지는 계산대에서 자리를 지키고 싶다. 그것이 무시하는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사장님인 엄마는 정반대다. 무조건 붙어서 설명해주고, 만약 그걸 부담스럽게 느끼고 도망간다면 어차피 살 생각이 없던 것이니 아쉬울 것 없다는 편이다.


이런 설명을 덧붙여주니 한 스위스 학생이 손을 들고 말한다. “선생님 말을 듣고 보니, 제가 사는 스위스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직원이 다가오지 않으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스위스에도 있거든요.” 한국과 비슷한 나라가 유럽에도 있었다니! 역시 한국만의 특징은 아니었던 것이다.


어제 김경일 교수님의 타인의 심리를 읽어드립니다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한 문화권 내부에서 나타나는 문화 차이가 훨씬 크다는 연구결과가 더 많다.’  한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 독일과 프랑스의 문화 차이가 동양과 서양의 문화 차이보다 더 클 수 있다는 것이다. 가깝게 지낸다는 게 비슷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 서로의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다르니까 인간인 것이고 다르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것이다.


오늘 수업에 들어온 스위스 학생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스레 스위스에 대한 내적 친밀감이 커졌다. 스위스도 서울 사람들처럼 일을 많이 하고 모든 게 바삐 돌아간단다. 그래서 서울의 바쁘고 정신없는 분위기가 처음부터 낯설지 않았다고.


스위스에 여행 간 친구들의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눈이 시리도록 하얀 설경을 볼 때는, 스위스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예쁘고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나라 정도로만 생각했다.


만약 내가 스위스에 간다면, 꼭 현지 친구들을 만나서 스위스에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지, 지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오는 건지 이야기해보고 싶다. 의외로 비슷한 구석이 많으면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게 좀 덜 억울할 것 같다.


오늘의 단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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