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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생 Oct 27. 2024

중간역 직거래 하실래요?

등가교환의 법칙

중학생 때부터 '중고나라'(대표적인 중고거래 네이버 카페)를 애용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사복을 입는 학교에 다녔었는데, 여의치 않은 주머니 사정으로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옷과 신발을 자주 사고 팔곤 했다. 요즘과 같이 동네 기반의 거래 위주인 당근이나 편의점 택배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대부분 지하철을 타고 가 직접 만나서 거래했다. 거래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 연락을 취한 후, 금액을 협의한 뒤 만날 장소를 정하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어디 사시나요?"


이때부터 눈치작전이 시작된다. 서로의 집과 인접한 지하철역을 까는 순간, 소요시간을 기준으로 중간쯤 거래 장소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서울 지하철 노선 중 좌측 상단에 위치한 '연신내'(은평구)에 살았던 나는, 더 좌측 상단에 위치한 일산(대화, 정발산, 마두 등)에 산다고 말했었다. 상대방이 우측 하단에서 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덜 이동하고 싶은 마음에 전략적으로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가끔 일산에 사는 분을 만나 나만 3-40분을 이동했던 적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상대방도 같은 전략을 쓰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때때로 거래 위치를 결정한 뒤, 금액을 낮추고 싶었던 경우에는 집 앞까지 찾아갈 테니 가격을 깎아줄 수 없겠냐고 제안을 한 경우도 있었다. 당시 돈은 없어도 체력과 시간은 많았으니 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같은 가치를 가진 두 가지 상품의 교환을 뜻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은 중고거래를 포함한 회사, 연인, 친구 등 대부분의 삶에서 적용된다. 나의 능력이 투입된 시간을 돈으로 환산해 받는다거나, 부족하거나 필요한 것을 서로 채워주는 등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교환하기 전 얻고자 하는 가치를 기억하는 것이다. 가치는 개인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정해질 수 있는 주관적인 요소기에 선택의 기준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근거를 기억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입사할 당시 커리어와 업무 경험을 쌓는다는 이유로 조금 아쉬운 수준의 급여를 받기로 결정했는데, 정작 회사에서 나의 커리어와 관련 없는 일만 수행한다거나 수동적으로 맡겨진 최소한의 일만 하고자 한다면 의도한 등가교환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셈이다.


얻고자 하는 것만큼 내어주는 것의 기회비용을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퇴근 후 친구의 부름에 나가는 것은 그저 만나서 즐거움만 얻는 것이 아니라, 혼자만의 시간과 돈을 내어주는 것이다. (요즘은 체력까지도)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인 재지마인드에서, 채널을 운영하는 부부가 친구인 외국인 부부를 집에 초대하는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만나서 식사를 한 뒤 아쉬움이 남아 2차로 우리 집에 가자고 제안했는데 친구가 웃으며 ‘집에 가야 되는 이유가 뭐야? 내게 그 시간을 팔아봐’라고 말했다고 한다. 만약 나였다면 얼굴이 붉어지며 할 말을 잃었을 것 같지만, 지나서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이상적인 등가교환을 위해 삶의 곳곳에서 본인만의 기준을 세워 온 단단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나’ 그리고 ‘너’에게, 가진 것을 허투루 내어주지 않길 바라는 배려 가득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을 제 값에 팔고 있을까? 상대방의 요구에 맞춰 헐값에 팔거나, 필요하지 않은 것과 교환하고 있진 않을까. 결국은 내가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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