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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음 Apr 20. 2021

추억하고 기다리며: 벚나무 가족 봄꽃 축제

동네식물을 좋아하는 김이음의 1920 기억상자 개봉기

 2020. 04. 01 수


 사월이 가까워오면 아무래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벚꽃', '벚나무'다. 벚나무는 장미과 벚나무 속의 식물인데 한 가족을 살펴보면 우리가 이미 어릴 때부터 노래로 많이 불러주어 친숙한 나무들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하고 운을 띄우면 바로 나오는 '복숭아꽃 살구꽃' 말이다.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복사나무, 살구나무를 포함해 매실나무, 앵도나무, 자두나무가 모두 벚나무 속에 속하는데 사실 벚꽃이 피기 전부터 벚나무 가족 봄꽃 축제는 ‘이미’ 시작되었었다.
 15동 매실나무를 시작으로 우리 동 1층 현관 앞 앵도나무, 지상주차장 & 봄꽃나무 존 자두나무, 관리사무소 맞은편 살구나무. 동네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운 '매실나무'로 벚나무 가족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 1번 주자 매실나무


 사랑해 마지않는 산수유를 더더더 많이 보고 싶어서 2019 춘분엔 남부터미널에서 첫차를 타고 구례 산수유 축제에 갔었다. 흩뿌리는 비로 날이 흐렸지만 노란빛이 은은하게 번진 반곡마을 풍경이 아늑해 좋았다. 산수유 못지않게 눈에 보일 때마다 부지런히 담아온 것이 있었는데 서시천변을 따라 걷다가 만난 하얀 꽃망울, 바로 '청매화'. 비도 내렸지만 산수유 공원에 있는 바람개비들이 휘청거릴 만큼 바람이 세게 불었는데 매화를 보는 순간 모든  멈추어버린 것처럼 고요해졌다. 더러는 꽃망울을 터트려 대여섯 정도 피어있는 매화도 있었는데 작은 꽃송이 하나가  아래  있는 나를 전등처럼 비춰주는  같기도 하고 우산을 씌워주는  같기도 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매화를 만나고서 동네 산수유나무 앞을 지나다가 싱그러운 잎을 보거나 빨강 열매를  때면, 구례에서처럼 비가 내려 안개 자욱한 날이면 매화 소식이 궁금했다. 그리고  년이 흘러 2020 3.
 달력을 보다가 ' 춘분이네.' 하고 그리워하던 이틀 전날. 동네 상가 약국에서 마스크 사기를 성공하고 ',  앞에 진달래 피었나   보고 가야지.' 들렀는데  뒤로 매실나무가 있는 거다! 마침 그날도 날이 흐려서 '장소는 달라도 이렇게 매실나무를 만나는가 .' 괜스레 혼자 감상에 젖어 그랬었다. 사실 이날부터 벚나무 가족 봄꽃 축제는 시작된  같다. 매화답게 조금은 조용히, 하지만 맑고 환하게. 동네 매실나무 덕에 코로나 19 어수선하고 무거운 마음을 맑은 빛으로, 매화 향기로 달랠  있었다.


* 2번 주자 앵도나무


 친해지는 데는 역시 가까이 지내며 자주 보는 것 만한 게 없는 것 같다. 물리적 거리를 따져 보았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현관에서 일곱, 여덟 걸음 정도만 걸으면 만날 수 있는. 게다가 키도 별로 크지 않아 가까이서 눈 맞춤할 수 있는. 나가고 들어올 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만나는. 나는 놓쳤다 할지라도 늘 한 자리에서 나를 보았을 앵도나무.
 봄을 알면 여름을 모르고, 가을은 알지만 겨울은 모르고 이런 경우가 많은데 앵도나무는 사계절을 함께 보낸 몇 안 되는 나무 중 하나일 것이다. 여린 꽃봉오리가 꽃잎을 하나씩 열어 보일 무렵, 보통 어린잎들과 달리 주름이 깊게 파여 강단 있어 보이는 새잎을 틔운다는 것도. 유월이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명랑해지는 새빨강 열매를 다는 것도. 잎 떨구고 겨울을 향해 갈 땐 다소 거칠어 보이는 뾰족뾰족한 겨울눈을 달고서 바람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다부진 모습으로 이따금씩 휘청거리는 마음을 붙잡아 주곤 했던 앵도나무. 그렇게 계절을 한 바퀴 돌아 지금은 다시 봄. 또 다른 시작. 여러모로 어려운 때이지만 무탈하게,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앵두꽃처럼 이 시기를 잘 건너갈 수 있다면 좋겠다.


* 3번 주자 살구나무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는 닮은 두 꽃. 실은 한 가족이기 때문이었다는 걸 그 둘이 자매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시기적으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를 맏언니라 부르고 싶은데 첫째 언니를 쏙 빼닮은 셋째라고 하면 어떨까?! 바로 우리 동네 매실나무와 살구나무 이야기다. 나뭇가지에 꽃이 바짝 붙어 있으면 매화, 꽃대가 길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면 벚꽃. 이렇게 차이를 알고서 둘이 구분되기 시작하자 난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매화를 보고서 꽃받침이 연두색이면 '청매화', 붉은색이면 "오, 이건 홍매화다.", "홍매화!" 자신 있게 이름을 부르곤 했는데 실은 홍매화가 아니라 살구꽃이었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되었다. 둘 다 꽃받침이 붉은색이기 때문에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에 따라 매화인지 살구꽃인지 구별할 수 있다는 것. 신기하게도 살구꽃은 꽃이 활짝 피면 꽃받침이 벗겨지듯이 뒤집어진다고 한다.
 한 면만 보고 다 안다고 착각했다. 다 알았다고. 그 이상 더 궁금해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 섣부른 마침표. 하지만 덕분에 쉼표를 얻기도 했다. 그동안 홍매화라고 잘못 이름 불러준 살구꽃을 찾아다니면서 만날 때마다 꽃받침이 바깥을 향해 젖혀있는지 한 송이 한 송이 살펴보느라 살구나무 아래 오래 머문 덕분에 올봄엔 살구 꽃비를 많이 맞았다.
 돌이켜 보니 '왜 자꾸 와서 언니 이름을 불러" 어리둥절했을 살구나무. 봄바람에 흩날려 머리 위로 살포시 떨어지는 꽃잎이 내겐 스르르 풀린 살구나무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이제야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게 되었네. 내겐 그래서 특별한 셋째 '살구나무'.


* 4번 주자 자두나무


 어릴 때부터 도장을 찍듯이 항상 똑같이 그려내던 나무가 하나 있다. 기다란 갈색 기둥 위로 초록색 동그라미를 얹고 그 안에 빨간 사과를 너 다섯 개 그려 넣곤 했던 사과나무. 하지만 거기서 사과를 뺀다면?! 무슨 나무인지 알 수가 없다. 남는 건 초록나무..... 이제 나무를 그릴 일은 별로 없지만 백목련 나뭇잎을 좋아하게 된 일을 계기로 잎과 꽃은 나와 나무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아주 중요한 정보통이다. 역시 가장 큰 도움을 받는 건 봄꽃인데 며칠 전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 나무. 아침에 일어나면 거실 베란다로 가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눈도장을 찍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여름, 복숭아를 가장 사랑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즐겨먹는 과일이 있다. 간혹 덜 익어 떫거나 ‘으’ 몸서리 처지는 시큼한 친구를 만날 때도 있지만 대체로 새콤달콤해 하나만 먹기엔 아쉬워 앉은자리에서 두세 개는 먹어줘야 하는 자두. 그 자두나무가 집 앞 지상주차장에 열 지어 심겨 있다.  자두꽃이 예쁘다는 걸 안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자두나무는 삼국시대 초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로 <동의보감> 한글본에는 '오얏'이라 하였는데 성씨 이를 일컬을 때도 ‘오얏 이’라고 한다고. (그래서 이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면 오얏 이 씨인지 꼭 물어보곤 한다.) 곤봉처럼 생긴 하얀 꽃망울이 터지기 시작하면 여기가 주차장인지 주변에 차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흰 꽃만 눈 안에 가득 담긴다. 연둣잎이 나기 시작하면서 더욱 싱그러워져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코로나 19로 출근일이 줄어들고 동네 산책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단지 안에 주차장 말고도 자두나무 스팟을 두 군데 더 발견했다. 그중 낭만 스팟은 유치원 옆이면서 내가 다녔던 중학교 건물 뒤편. 그날은 유난히 새소리가 많이 들렸는데 새들이 꽃 꿀을 맛나게 먹는 동안 자두나무 아래 서 있던 내 머리 위로 하얀 꽃송이가 떨어지면서 덕분에 난 향기를 맛나게 냠냠.


* 5번 주자 왕벚나무


 볕이 좋아 오랜만에 좋아하는 하늘색 운동화를 신고 집 앞 학의천으로 마실을 나갔다. 왕벚나무가 많이 심겨 있어 봄 풍경이 참 예쁜데 그동안 한 번도 가질 못했다. 엄마를 꼬옥 끌어안고 벚나무를 배경으로 사진 찍던 귀여운 아들도, 벚꽃 사이로 보이던 직박구리도, 센 바람을 타고 팽글팽글 경쾌하게 날아오던 꽃송이도 모두 소소한 기쁨으로 기분 좋게 담겼다. 언제나 너른 품을 내어주는 나무들에게 고마운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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