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에게는 천재의 속도가 있고 지식인에게는 지식인의 속도가 있고 학자에게는 학자의 속도가 있습니다. p.27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 무라카미 하루키 | 현대문학
남편과 대화하다 보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여보,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두괄식으로 말해주면 안 될까?"
"그래서 그걸 찾았다고 못 찾았다고?
책을 그리 좋아하고 즐겨 읽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지만 유독 소설은 더욱 읽기가 힘들었고 지금도 손이 잘 안 가는 장르다. 큰 소리로 자랑할 이야기는 아니지만 마음먹고 소설을 읽기로 했다면 일단 노트를 펴고 등장인물의 이름과 특징을 도식화하기 시작한다. 읽는 중간중간에도 기억해야 할 부분들을 메모하며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특수하고 기묘한 습관을 가진 사람인지라 주제에서 벗어난 것만 같은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지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책장을 덮고 싶어지기도 한다.소설의 긴 호흡을 따라가기엔 성질이 급하고 읽어가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여러 마음들을 오래 품어줄 여유가 없는 것이다.
쓰기의 책장 3,4,5기의 시간을 지나는 동안 1등 요정을 담당했던 나는 미리 준비해 둔 것도 아닌데 오프닝레터의 질문이 올라오면 대부분 3-4시간을 넘기지 않아 한 편의 초고를 완성해 올리고는 했다. 주르륵 써졌고 대체적으로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글일 때가 많았다. 그러나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의 출력 속도와 나의 그것은 무언가 달라 보인다는 생각이 늘 있던 차였다.
퇴고를 통해 글에 온기를 불어넣는 일, 진득하게 바라보며 진짜 내 마음과 닮아있는 글인지 비교해 보는 일, 이 문장이 이렇게 바뀐다면, 이를테면 이런 말로 처음을 시작해 본다면? 하고 이미 충분해 보이는 글을 끊임없이 두드려 보는 일이 나의 적성에 맞을까?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로 살아가는 일은 나의 폐활량에 어울리지 않는 욕심 같아 보인다. 다만 글로 생각을 정리하고 삶을 정리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라는 사람의 기묘하고 고상한 취미인 것이 확실하다면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달리고 쉴 때 가장 성취감을 느끼고 만족스러운지, 뛰고 쉬고를 반복해 보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다. 폐활량을 늘려가는 건, 현재의 수준이라는 기준을 찾은 뒤에 가능한 일일 테니. 일단 뛰어보는 거다.
쓰지 않고는 못 견딜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쓰고 싶은 글들이 많으니까(앞으로도 많기를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