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 합격소식을 들은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단 하나의 글도 발행할 용기가 없었다. 세상에 나의 글을 드러내는 일이 여전히 두려웠고 잘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았다. 완벽한 계획과 밑그림을 그리고 시작하지 않으면 중간에 다 허물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마음을 제어하기 힘들 것이 뻔했기에 시작조차 하지 못한차였다.
가정주부로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남편에게 자랑할만한 일은 많지 않았다. 아이들이야 늘 잘 돌봐야 하는 것이고 집은 어떤 날은 조금 지저분하고 어떤 날은 조금 깨끗했지만 그마저도 칭찬받고 자랑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브런치 작가 합격 소식을 전했을 때 남편은 짐짓 놀란 듯했다. 브런치 작가 합격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들어 알고 있었을뿐더러 요즘 브런치스토리의 글들이 구글에서 검색이 잘된다며 작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친 시점과 맞물려서였기도 했을 것이다.
뿌듯했다. 내세울 것 없던 일상에서 남편보다 한 걸음 앞서 나간 무언가가 내게 있다고 생각하니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었다. 나의 이 자랑스러운 마음을 브런치스토리 팝업에 가면 '작가증'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와야 하는 그것이었다. 그 와중에 팝업 행사 내용 중 인턴작가 등록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남편에게 말해줄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나만 갖고 우쭐대고 싶었으니)
미우니 미우니 해도 내 남편이니 선심 쓰듯 고급정보를 흘려주었더니 두말없이 같이 가자고 했다. 목적 없이 마트에서 배회하는 건 너무 힘들지만 안 그래도 브런치 작가가 되고 싶었던 남편에게 인턴작가 등록 기회는 너무나 목적지향적인 나들이가 될 것이었기에 그렇게 우리의 팝업스토어 동행이 시작되었다.
입구에서부터 마음에 쏙 드는 멘트가 있었다.
작가님이세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분명 나는 신나 있었다. 네 맞아요.
저는 작가고 이쪽은 아직 아니에요.
작가인 나에게는 검은색의 워크북을 주었고, 작가가 아닌 남편에게는 인턴작가 등록에 참여하겠냐고 묻고는 하얀색 워크북과 함께 24페이지의 내용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된다는 안내를 해주었다.
일단 나부터 작가증에 등록할 사진을 찍고 작가이름이 새겨진 작가증을 발급받았다. 롯데시네마에서 종종 영화를 볼 때마다 빠지지 않고 만들었던 포토카드와 같은 재질의 카드였다. 제법 마음에 들게 나온 내 사진과 작가이름.
사실 아직 작가이름을 정하지 못한 상태다. 이유는 남편에게 내 브런치작가 이름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건 비밀로 해두겠다.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꽤나 등장할 것 같은데 면전에 대고 욕은 잘 못하는 편이다.)
브런치 수장작으로 세상에 나온 책들이 쭉 모여있는 책장에 꽤나 많은 책들이 있었고 북스타그램을 하는 지인들의 피드에서 많이 봤던 책들도 괜스레 반가웠다.
작가가 된 그들의 옹아리 시절의 메모들부터 시작해서 작가가 되기 위해 무수히 고민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담긴 노트, 그리고 만년필까지 이 귀한 것들을 이렇게 전시회에 내놓을 수 있는 용기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모든 사람의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생각을 전개하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은 알고야 있었지만 전시된 그들의 머릿속 이미지들은 그것을 증명해 주었다. 방법이야 어찌 되었던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건 아마 꾸준히 써온 일이었겠지만 말이다.
글을 쓰기 시작하기 전, 작가마다의 리츄얼을 보여주는 소품들, 커피를 내리거나 좋은 아로마 향을 맡거나 하는 등의 팁들도 엿보고,
어떤 동기로 계속해서 글을 써나갔는지 글쓰기 레시피를 얻을 수도 있었다. 단지 기계적으로 글을 써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아니라 글쓰기를 위한 그 시간 자체를 즐기고 사랑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다꾸가 취미인 나에게 가장 좋았던 건 다양한 질문을 담아 올 수 있도록 전시공간 곳곳에 스티커를 비치해 둔 것이었다.
문장마다 스케줄을 잡아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여기서 만난 문장들로만 대화를 해도 1년은 즐겁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잔치집의 넉넉한 인심답게 전시회 내용을 인스타 스토리나 피드로 공유하면 마우스패드와 모나미 볼펜을 주는 인증이벤트까지! 워크북과 함께 손에 가득 챙긴 스티커와 굿즈들로 브런치작가인 나의 마음은 곳간 가득 채운 글감으로 설레고 뿌듯함으로 두둥실 날아오를 것 같았다.
언젠가 내가 브런치 작가로 꾸준히 글을 쓰다 정말로 출간작가가 된다면 나의 시작이 바로 브런치스토리 팝업이었다고 말을 하는 날이 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른다, 글 하나 발행 안 한 나에게 왜 이런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넌지시 남편이 인턴작가 등록을 위해 작성한 계획표를 보니 뭐지? 나보다 빨리 작가가 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남편에게 말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엄청 질투를 하거나 하진 않을 거다.)
아이들 키우며 서로 눈 마주칠 기회도 많지 않은 팍팍한 삶에서 둘이 서로 같은 주제로 미래를 그리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시간이 좋았고 왜인지 우리의 멋진 미래의 모습 속에 그 시작이 바로 오늘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그려져 행복하단 생각을 했다.
이 글이 성지순례글이 되길 바라며 작가의 꿈을 꾸고 있는 모두에게 브런치스토리 팝업에 꼭 다녀오길 추천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