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아름 Jan 18. 2024

06 모든 수업이 다 재밌어! 엄마가 선생님이라도?

대안학교 수업이야기, 방학에도 학교에 가고 싶어.

수요일마다 학교 주변 동네를 산책하며 청소하는 플로깅 수업


가족이 나의 선생님이 되는 일은,

음... 많이, 좀 많이 어려운 일.

괜히 정조가 세자를 가르치다 재떨이를 던졌을까.


아이와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사실, 걱정(?) 아니, 고민의 지점이 딱 하나 있긴 했다. 바로 내 수업을 아이가 듣게 된다는 것. 


내가 다니는 학교에 엄마가 선생님이라면?


이런 비슷한 일 이미 겪은 바 있어 더 염려가 되었는지 모른다. 남동생이 고2때 내가 교생으로 한 달동안 문학 수업을 들어간 적이 있었다. 동생이 얼마나 싫어했는지 학교에선 아는 척도 못하게 했고, 등하교도 따로 했다. 냉정한 인간.(실은 내가 과거에 참, 못해줬다… 다 벌 받는거야ㅠㅠ 인간은 언젠가)


대안학교가 너무 좋아서 아이를 데려오긴 했는데, ‘엄마가 하는 수업이 별로’라고 한다면 이것 참 큰일. 그렇게 수업 첫날은 좀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출근했다. 아이와 학교에서 마주치자 기분이 정말 묘했다. 


아, 시작이구나! 너도, 나도. 


우리 엄마 닮은 국어선생님, 안녕하세요?


유쾌한 아이는 내게 인사를 한다. ‘선생님, 정말 우리 엄마를 많이 닮으셨네요!’라면서 ‘오늘 저녁은 맛있는 것으로 해달라고 저희 엄마에게 전해주세요. 국어선생님’이란다. 어찌나 넉살이 좋은지 왠종일 웃었다. 다행히 수업 후기는 ‘괜찮았어.’라는 값진 칭찬을 받았다. 국어시간에는 보물찾기를 하며 전 단원을 복습하기도 하고, 시와 소설을 쓰기도 하고, ‘홈쇼핑’ 말하기를 통해 자신이 정한 물건을 판매하며 상대방을 설득해보기도 했다.  


아이가 대안학교에 다니면서 다른 과목에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 유심히 살피게 되었는데, ‘나도 중학교 때 이런 학교를 다녔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 재밌고, 부럽다. 과학시간에는 팝콘을 튀기며 실험을 하고, 수학시간에는 스텐실로 옷에 무늬를 넣는 수업을 하고, 독서 시간에는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선택해 읽고 소개한다. 수업을 이론으로만 가르치지 않고,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주도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뭔가를 모색하는 선생님들의 노력은 매일 이어진다. 


그래도 궁금해서 '어떤 수업이 제일 재밌냐?'고 물어봤더니, ‘다 재밌는데’라고 말하는 아이. 아, 수업이 재미있을 수 있구나. 그것도 모든 수업이 다. 아이의 말로 듣고보니 더 후회됐다. 진작 보낼 걸 그랬다. 대안학교. 


그리고 ‘플로깅’수업은 참 매력적이었다. 환경관련 토론수업을 하면서 ‘진짜 이러다 지구가 큰일난다’라는 생각을 늘 했는데, 이렇게 실천하는 수업이라니! 매주 수요일 오후, 추우나 더우나 1,2학기 내내 아이들은 청소조끼를 입고 청소도구들을 챙겨 동네로 나간다. 걸으며 쓰레기와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는다. 


너희 고운 손에 이 황량했던 동네가 사람사는 곳처럼 생기가 있어지는구나. 너희가 진짜 봄이야. 


한 번은 학교에 좀 일찍 갔더니 뽑기를 하고 있다. 뭐지?

이름하여 '농부와 새싹'. 


한달에 한 번 농부는 자신의 새싹을 뽑는다. ‘농부’는 주어진 시간 동안 물과 햇빛을 주고 풀을 메면서 ‘새싹’이 잘 자라도록 돕는데, 아무도 모르게!가 포인트다. 실제로 해보니 굉장히 신경쓰인다. 몰래 편지와 과자나 음료를 전달하기도 하고, 마주칠때마다 무심한 듯 아닌 듯 반갑게 대하는 것이 꽤나 연기력이 필요한 일. 그래도 좋았던 건 나의 새싹을 위해 기도하고 살피며 전보다 더 개인적인, 신경 쓰이는 사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네가 신경쓰여. 더 알아가고 싶어.


수업으로 아이와 만나며 객관적으로 아이를 보게 됐다. 생각보다 말이 빨라 실수가 많고, 자기 물건을 잘 못챙겨 혼나기 일쑤던 아이는 내가 알지 못하던 눈부신 것들을 참 많이 갖고 있었다. 좁아터진 ‘그것’ 밖에 볼 수 없는 어른들은 아이들을 통해서야 ‘그 너머’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새로 시작되는 봄엔 또 얼마나 즐거운 수업들이 계속 될까? 이 길을 너희와 함께 걷고 있어서 외롭지 않고 든든하다고. 겨울방학이 시작된 지 2주 지났는데 너희가 없으니 마음이 이상하게 허전하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05 얘들아, 교무실 좀 그만 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