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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름 Feb 02. 2024

가사를 쓴다는 것_‘푸른 빛’ 음원

노래도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기억의 조각> 대본 중에서 '파랑색' 부분


조명on [파랑색    

 

[지문]

남자가 꽃을 들고 여자에게 걸어간다.      


[남자 낭독]

저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합니다. 한결같았다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저 자신이 자꾸 마음에 쓰입니다. 오늘은 그녀가 좋아하는 유칼립투스와 연분홍 장미꽃을 샀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있어도 자꾸 삐거덕거리는 마음의 소리가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하네요. 사랑이 변했다면 누구의 탓일까요?    

 

[여자 낭독]

그는 요즘 바쁘고 피곤해 보입니다. 꽃을 든 그가 오고 있습니다. 유칼립투스에 연분홍 장미라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들입니다. 그런데 그는 쓴 미소를 짓고 있네요. 꽃이 시들 듯, 저의 마음도 시들어버립니다. 순간, 생의 한가운데에서 무엇인가가 툭, 떨어집니다. 탁, 바닥에 떨어진 붉은 끈은 이렇게 밟히다 낡아가겠죠. 우리의 사랑처럼.      


[지문여자 꽃이 바닥을 향하도록 아래쪽으로 들고 퇴장남자돌아서 가는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 성악곡    

 

이해한다는 것은 오래된 착각

우리의 사랑이 희미해질 때     

그의 시든 미소와 쓴웃음

나는 텅 빈 거리에서 

하염없이 그를 보았다     

마주한 우리 사이로 새어드는 푸른 빛

희석된 감정들은 아스라이 낡아가고

떨어진 끈은 짓밟혀 생의 바닥에 놓였다     

우리 마음이 다시 닿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다시 노래가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사랑이 희미해질 때 

나는 그를 놓았다     


로맨스는 쓸때도 어려웠지만, 내가 쓴 로맨스 공연을 보는 건 더 어려웠다. 허벅지를 찔러가며 참으면서 힘들게 공연 시간을 보냈는데, 아무래도 내 오롯한 감정이 담긴 대본이 아니어서 그런걸까.(<노트르담드파리> 뮤지컬에서 주교의 노래-’파멸의 길로‘를 들어보면 이렇게까지 에스메렐다를 사랑할 수도 있다는 처절함이 절절한데)


최근 내가 설레는 감정은 이렇다. 날씨 좋은 날, 수건만 따로 세탁한 다음 건조기에서 따뜻한 수건들을 꺼내 갠 다음, 차곡차곡 욕실에 넣는 순간? 청소기를 다 돌리고 마시는 커피? 모처럼 성공해서 제대로 맛이 난 파스타? 지마켓에서 15% 쿠폰으로 산 구구크러스터 아이스크림? 뭐 이런 엄청난 기쁨이다. 나에게도 있었던 스무살, 당신을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감정은 이 빨래에 다 묻히고.


어쨌든 작년 봄 내내 ‘일곱가지 사랑, 사랑의 기억’으로 성악극이 있는 나레이션과 대화의 대본을 쓰고 11월에 을지로 푸르지오아트홀에서 공연을 했다. 배우들의 감정선이 내가 의도한 대본과 조금 맞지 않거나, 성악의 가사 잘 들리지 않아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훌륭한 공연.


그리고 일곱가지 색깔 중에 안그래도 ’파랑‘이 가장 마음에 들었었는데, ’푸른 빛‘ 노래가 음원으로 나왔다고 대표님께 연락이 왔다. 작가 부분 이름이 빠져 대표님이 또 애써주셨고, 새로운 세계로 한 발 갈 수 있게 되었다.


최근 소설도, 대본도, 가사도 써 보는데 가장 어려운게 가사쓰기다. ’시 감성‘은 진짜 다른 차원이라 유체이탈을 해야 가능한데, 구멍 난 양말을 신고 흐트러진 머리를 묶고 빨래 개고 저녁 메뉴 고민하며 검색하는 나는 좀처럼 그 곳에서 나와지지가 않는다. 이렇게 사랑에 떨리고 아련한 것들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니, 겨우겨우 쓴 글들은 미치도록 오그라들수밖에. 그래서 가사 쓰는 내내 대표님께 ‘가사는 어렵네요. 어려워요.’라고 몇 번은 말한 것 같다.


가사 쓸 일이 다음에 또 있으면 장소를 좀 바꿔서, 산이든 바다든 가서 써 봐야겠다는 생각. 아니면 카페라도 가서 끄적여보면 나을려나. 그런데 모르겠다. 이 생각이란 놈은 요망스러워서 공간이 바뀐들 날 도와줄 지.



https://youtu.be/fALZYekPUek?si=pMAmiCGEaVVRCowF

푸른 빛 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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