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독일 역사 문화(11)-자유와 한자동맹의 도시 함부르크


독일 하면 우선 전쟁으로 인한 폐허의 잿더미에서 ‘라인강의 기적’이라는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가 떠오른다. 바흐, 베토벤, 멘델스존, 브람스, 바그너 등 음악가는 물론 괴테, 실러,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귄터 그라스 등 문인들로도 친근한 나라다. 특히 분단의 고통을 함께 겪으면서 심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다. 부럽게도 독일은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기회를 이용하여 1990년에 통일을 이룩했다. 우리는 독일 통일의 사례에서 여러 경험을 배우고 교훈도 얻고 있다.         

              



  자유와 한자동맹의 도시      


북부 독일의 대표 도시는 함부르크다. 인구 185만 명의 함부르크는 수도 베를린에 이어 독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다. 독일에 16개의 주(州)가 있는데, 함부르크는 시(市)이면서 주다. 항구 도시요, 멘델스존과 브람스가 출생했고 연 중 뮤지컬이 공연되는 음악 도시이며 언론 도시이다. 국제해양법재판소도 있다. ‘부산교’ 다리와 ‘한국 길’ 도로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함부르크의 자존심이자 자랑은 역사적으로 ‘자유와 한자동맹의 도시(Freie und Hansestadt)’였다는 점이다. 오늘날에도 공식문서에 자랑스럽게 ‘자유와 한자동맹의 도시 함부르크’라고 쓸 정도다.      


자유시(自由市)는 신성로마제국(962〜1806년)에서 유래했다. 자유시는 공작이나 백작 등 귀족의 지배를 받지 않았던 황제 직속의 도시로 도시 자체가 하나의 국가였다. “함부르크에는 귀족이 없었고, 노예도 없었다. 단 하나의 신분인 시민만 있었다.”라는 말은 함부르크의 특성을 잘 드러내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함부르크에는 흔한 성(城)이 없다. 


한자동맹은 해상무역의 안전과 상인들의 권익을 위해 뤼베크와 함부르크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동맹으로 13세기에서 17세기까지 존속했다. 독일의 도시들은 물론 200여 러시아, 폴란드, 핀란드, 벨기에, 네덜란드의 200여 개 도시들이 참여했던 다국적 도시 동맹체였다. 독일의 대표 항공사 루프트한자(Lufthansa)는 여기서 유래했다. 한자동맹이 해상무역을 장악했듯이 하늘 교통의 강자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이런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함부르크를 돌아본다.   

       


  

세계 10위권의 항구 도시     


함부르크 하면 항구가 떠오른다. 그만큼 항구의 이미지가 강한 도시다. 항구이지만 놀랍게도 바다가 아닌 강을 끼고 있다. 체코와 드레스덴을 거쳐 온 엘베강이 함부르크를 통해 북해(北海)로 흐르고 있어 일찍부터 항구로 발전했다. 함부르크는 북유럽과 중부 유럽은 물론 세계로 나가는 관문이었다. 강을 끼고 있음에도 함부르크 항은 세계 10위권의 항구다. 컨테이너를 가득 실은 우리 선박들도 함부르크 항을 자주 드나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다. 


함부르크 항구의 역사는 800년도 넘었다. 1189년 5월 7일 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1세(재위: 1155〜1190년, 붉은 수염으로 유명했으며 제3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다가 오늘날 터키 안탈리아 지역의 살레프 강에서 사망)로부터 북해 항해의 면세권을 얻으며 항구로 성장했다. 항구 개항을 기념하는 축제가 매년 5월에 열린다. 3일 동안 계속되는 세계 최대의 항구 축제를 보기 위해 백만여 명의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개항 832년이 된 올해 축제는 코로나 팬더믹으로 온라인으로 열렸다.    



엘베강가의 함부르크 항. 지금은 없어진 한진해운의 선박도 보인다 (사진 : 손선홍)


               



  함부르크의 상징 성 미카엘 교회     


독일은 도시마다 그 도시를 상징하는 건물이 있다. 함부르크를 상징하는 건물은 성 미카엘 교회(St. Michaelis Kirche)다. 대천사 미카엘에게 봉헌하기 위해 1669년에 세운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선원들이 항해의 안전과 행운을 기원하며 예배를 드렸던 곳이다. 수용 인원은 2,500명으로 독일에서는 큰 교회에 속한다. 성 미카엘 교회는 화재와 폭격으로 세 번이나 파괴되는 시련을 겪었다. 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에 파괴된 후 1952년에 복구되어 오늘의 모습을 하고 있다. 


교회 입구 왼편에 있는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동상은 이 교회가 개신교 교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입구 정면에 늠름한 대천사 미카엘 상이 있다. 종탑에는 독일에서 가장 큰 시계가 있다. 직경 8m, 시침 3.6m, 분침 5m로 멀리서도 잘 보인다. 




함부르크의 상징인 성 미카엘 교회(사진 : 손선홍)


                 

교회 안에는 1833년 함부르크에서 태어나 1897년 빈에서 사망한 음악가 요하네스 브람스가 이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는 동판이 있다. 2015년 11월에는 함부르크 태생 헬무트 슈미트(Helmut Schmidt, 재임 : 1974〜1982년) 전 총리의 장례식이 열리기도 했다. 생전에 그는 독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제1공영 TV(ARD)의 대담 프로에서 줄담배를 피워도 국민들이 받아들이는 유일한 자였다. 유럽의 성당이나 교회는 태어나 세례를 받는 곳이자, 성장하여 결혼식을 하는 곳이며 죽어서 장례식을 치르는 곳이다. 성 미카엘 교회는 ‘미셀(Michel)’로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함부르크의 새로운 상징 엘프필하모니     


  함부르크는 낙후된 항만지역을 개발하여 신도시 하펜 시티(Hafen City)를 조성하고 있다. 이곳에 세계적인 음악공연 홀 엘프필하모니(Elbphilharmonie)가 들어섰다. 엘베 강에 새로운 상징이자 공연 홀을 세우기 위해 2006년 착공하여 2017년 1월에 개관한 홀이다. 이미 있던 대형 창고 건물(아래 붉은 부분)을 개조하고, 그 위(푸른 부분)를 새로 세웠다. 공연 홀뿐만 아니라 호텔과 아파트도 있는 복합 건물이다.


  엘프필하모니에는 하나의 대형 공연 홀(2,100석)과 두 개의 중소 공연 홀(550석과 170석)이 있다. 대형 홀에는 4,765개의 파이프와 연결된 오르간이 있다. 엘프필하모니 개관과 함께 함부르크에 소재한 ‘북독일 방송NDR 오케스트라’는 건물 이름과 같게 엘프필하모니로 이름을 바꾸었다.  


  함부르크에는 이외에도 시청사 건물, 브람스 박물관, 해양 박물관, 함부르크 현대미술관, 함부르크 예술 및 응용 미술관, 함부르크 역사박물관 등 둘러볼 곳이 많이 있다. 돌아다니다 시민들이 즐겨 찾는 알스터(Alster) 호수 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함부르크의 역사와 문화에 젖어 보는 것도 좋겠다.     


                

함부르크의 새로운 상징으로 떠오르는 엘프필하모니(사진 : 손선홍)




 * 이 글은 저자가 <고도 공주 고마나루 이야기> 2021년 여름호에 게재한 글입니다. 



** 모두 사진 출처 : Wikipedia


#함부르크, #자유시, #한자동맹, #함부르크항, #프리드리히1세, #성미카엘교회, #미셀, #요하네스브람스, #헬무트슈미트, #엘프필하모니 






* 참고

  - 손선홍『도시로 떠난 독일 역사 문화 산책』서울 : 푸른길,  2020.                

                            


작가의 이전글 독일 역사 문화(10)-슈테델 박물관의 괴테 그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