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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준 Mar 3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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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호. 아고라커피

♬ Baby can I hold you - Tracy champman


오랜만에 서영이와 공릉동 산책로를 걸었다. 겨울 내내 추위로 몸을 숨겨온 꽃들은 어느새 산책로를 따라 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실 창동, 노원역 인근에서 본 매화나무가 정말 최고였다. 만개한 꽃들을 환영하는 인파도 제법 되었다. 산책을 나온 강아지는 대각선으로 걷는 것도 모른채 신이 나서 이곳저곳 냄새를 맡기 바쁘고,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기도 산뜻한 바람을 이겨내며 발을 내딛는다. 이제야 정말 봄이 왔음을 실감한다. 벌써 4월이 다 되었는데 말이지!


"오는 길에 가고싶은 카페 있었어?"

"아니. 우리가 찾아봤던 곳으로 가자!"


선물같은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1시간을 넘게 걸었다. 슬슬 다리도 피로하니 휴식이 필요하다. 갈증을 해결해줄 시원한 아메리카노 한 잔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오기 전 찾아두었던 던모스와 아고라커피 중에서 고민하던 우리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 아고라커피 ]로 향한다.



SO CHILL-!



공릉역 산책로와는 조금 떨어진, 주택가 인근에 위치한 아고라커피는 넓고 시원한 통창과 포인트 창문을 동시에 활용하며 꽤나 감각적인 익스테리어를 뽐낸다. 매장에 들어서면 사실 문 앞에 앉은 장발의 남자 무리들 덕분에 들어가기 조금 부담스러웠다 좌측에는 꽤 넓직한 바크지 않은 매장에 이렇게 넓은 바를?가, 우측에는 적당한 간격의 10개 남짓한 테이블들이 보인다. 정면의 넓직한 벽면에는 카페의 시그니처 캐릭터 'CHEESE'가 그려져있다. 그저 괜찮은 카페일 줄만 알았는데, MD제품까지?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거라고 생각했던 서영이가 왠일로 메뉴판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다. "다른거 마시려구?" 그러자 서영이는 자몽에이드와 아메리카노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고 대답한다. 물론 결과는 같았다. 역시 갈증날 때는 아메리카노가 최고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3,500원



"쓰읍. 좀 신데?" 하우스블렌드 원두 맛을 묻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산미가 강한 아메리카노를 선호하지 않는 서영이의 입맛과는 맞지 않았다. 다른 음료로 다시 주문할지 묻는 내게 "아냐. 생각보다 괜찮아"라며 한 모금 더 들이킨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서영이는 자신에게 맞는 커피를 마실 때는 1/3 정도를 남기고, 맞지 않는 커피를 마실 때는 1/2 이상을 남긴다는 사실. 그리고 실제로 이 예상은 거의 벗어난 적이 없다. 오늘도 역시 그러했다.


아무래도 곁들일 디저트가 있으면 커피를 마시기에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여, 서영이의 손을 이끌고 쇼케이스 앞으로 향한다. 여러 종류의 케이크가 있었지만 꽤나 맘에 들었던 말차, 흑임자 치즈 케이크는 아쉽게도 품절이었다. 바스크 치즈 케이크와 고민하다, 결국 초코 치즈 케이크를 도전해보기로 한다.


곧바로 케이크가 나오자 서둘러 한 입. 그리고 그녀가 뱉은 첫 마디는,


"오.. 너무 달다"

".. 정말이네"


진짜 달더라. 이 글을 보실지는 모르겠지만, 당도는 반만 줄여주시길!



누가 케이크로 모래성 무너뜨리기 했냐잉



오늘은 참 많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물론 조용한 매장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매우 작은 소리로 이야기했다. 수원으로 이사오기 전에 내가 살았던 지역의 전세가 2년 사이에 몇천만원이 오른 사실, 후에 카페를 차리면 MD 상품을 연계해서 판매할 것인지에 대한 여부, 어릴 때 즐겨먹었던 잼, 2살배기 아이 노노코 영상 등 대화 흐름의 변화에 거침이 없었다. 아마 우리의 이야기를 엿들었다면 꽤나 흥미로웠을 것이다. 역시 서영이랑 얘기하는게 세상에서 제일 즐겁다.


"이 카페는 브런치에 안쓸거야?"


처음 브런치 글을 쓸 때만 해도 리뷰성 글을 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삶에서 카페가 큰 부분을 차지하니까, 내가 다녀온 카페를 중심으로 일상에서의 사소한 발견들을 기록해보자'고 생각했는데, 서영이의 말을 듣고는 브런치 활동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어느새 그 목적이 전도되어있음을 깨달았다. 방향성을 잃은 글은 결코 '내 글'이 아니다. 이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래서팬더같은 서영이(크앙)



저녁 시간이 되어도 조용할 거란 예상은 빗나갔다. 5시 30분이 조금 넘은 시간에 들어온 세 사람은 꽤나 큰 목소리로 보험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내용이 무엇인지 다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자 서영이의 한 마디. "시끄러운 사람이 한 명 있으면 금방 소란스러워져". 조금만 소리를 낮추면 참 좋겠는데. 가끔은 내 귀에 지정소리 음량 조절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만약 있었으면 그쪽 테이블의 음량은 최저점에 놓겠지?


매장의 분위기는 오는 사람을 결정하지만, 때로는 오는 사람이 매장의 분위기를 결정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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