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헤매이다, 죽어 헤매일 테니,
2024년 1월 16일, 바람이 일지 않는 맑은 하늘, 영하4도~5도
늘 지나가던 길이, 낯설어질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를 만나고 오는 길은, 매번 오가던 경로로만 다니는 내 습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불현듯 낯설어진다. 차선 표시는 유난히 희미해 보이고, 중앙분리대 곳곳은 찌그러져 보이고, ‘연약 지반’이라는 주의 문구가 붙은 구간은 오늘따라 들쑥날쑥해 보인다. 사실, 진짜 문제는 그런 세부에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길이 뿜어내는 풍경 전체가 낯설어져서, 대체 어디를 달리고 있는 건지,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혼돈에 빠지는 거다. 그 혼돈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또 어디로 가는 걸까.
어린 날이 생각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을까. 학교로 가는 길이었을까. 아니면 친구를 찾아가는 길이었을까. 공상에 빠져 있었던 건지, 일상의 사건을 되짚느라 온 신경을 집중시키고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텅 비어 있었던 건지, 알 수 없지만, 문득 고개를 들어 정신을 차렸을 때, 대체 여기가 어딘지, 어디를 향해 걷고 있던 건지, 지금은 몇 시인지, 그리고 나는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황망한 심정에 사로잡힌 채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날.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있었나. 생각해 보니, 이미 그때 길을 잃어서, 난 지금도, 길을 가다 낯선 풍경에 둘러싸인 것 같은 허허로움에 사로잡히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나는, ‘헤매이는’ 존재였던 거다.
헤매이는 존재에게 삶은 늘 낯설다.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살아가기로 하는 건, 문득 고개 들어 둘러본 거기에 삶이 있었기 때문이고, 여전히 삶이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솔직히, 어서 죽고 싶기도 하다. 삶이야 거기 있든 말든, 기왕 헤매이는 존재로 존재할 거라면, 차라리 재가 되어, 원자가 되어, 자유롭게 날아다니다가 어느 별의 흙으로 내려앉고 싶어지는 거다. 그러다 또 바람결에 날아갈 수 있으리. 그러나, 살아가기로 하는 건, 거기 삶이 있는 데다가, 거기 당신 목소리가 있기 때문이고, 거기 꽃이 피고, 바람이 불고, 나무가 뿌리내리고, 물이 흐르기 때문이다. 비록 목소리는 이내 슬픔에 잠기고, 꽃은 지고, 바람은 멈추고, 나무는 뿌리 뽑히고, 물은 마를 수 있겠지만, 기어이 그날이 오더라도, 괜찮다. 어차피 헤매이는 존재로 존재할 거라면, 살아 헤매이다가, 죽어 헤매일 테니, 꽃이야 진들 어떠리, 바람이야 멈춘들 어떠리, 나무야 뿌리 뽑힌들 어떠리, 물이야 말라버린들 어떠리. 내가 부재하더라도, 당신이 부재하더라도, 꽃은 다시 피고, 바람은 다시 불고, 나무는 다시 뿌리내리고, 물은 다시 흐를 테니.
그러니, 삶이 낯설다는 건, 삶을 둘러싼 풍경이 낯설다는 건, 사실, 삶은 결코 내 것인 적 없으며, 이 세상도 내 것인 적 없다는, 단순하고 자명한 진실 때문이겠지. 헤매이는 존재로 살아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