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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Jan 25. 2024

생의 수몰지구에서 중얼거리다

2024년 1월 25일, 깨질 듯한 하늘, 뒤집어진 바다, -11~2도

파주가 영하 17도로 곤두박질칠 거라는 예고에 서둘러 발길을 옮긴다. 혹여, 그 을씨년스런 빈 집에 물난리라도 난다면 어찌할거나. 가뜩이나, 파주 집에 갈라치면, 수몰된 옛집 언저리를 기웃거리는 심정이 되는데, 행여 동장군의 위세에  빈 공간이 파열음이라도 낸다면, 물에 잠긴 빈 집을 찰박찰박 밟는 내 마음도 기어이 수몰돼 버리리라. 출발하는 아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 마치 못 갈 데를 향하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허둥대는 내 모습이 딱하게 느껴져,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진정해.


차갑게 식어버린 빈 집에는 유령이 사는가. 혹, 어머니와 장자는 매년 1월이 되면, 이 황량한 공간에서 만나,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이려나. 낸들 알 수 있나. 영매도 아니고, 신묘한 꿈을 꾸는 사람도 아니니. 허나, 가만히, 환영처럼 기억을 더듬어보는 데는 능한 자라, 허허로운 공간 이곳저곳에서 그이들과 마주치는 거다. 그뿐이랴. 생을 망각한 채 누워 있는 아비도, 자기파괴로 헛되이 생을 갉아먹은 누이도 저기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언제, 우리 모두가, 이렇듯, 한자리에, 둘러앉았던 적 있었나.


귀가 어둔 자인데도, 죽은 자의 목소리는 잘 들려서, 문득, 나는, 저기 소파 위에 누운 어미의 목소리에게 말을 건다. 엄마? 생전 어머니에게 ‘엄마’라 말 건네본 적 언제였던가. 기억나지 않아, 그 어색한 말을, 수몰된 어느 곳 물결 위로 돌팔매질하듯 던진다. 파문이 일며, 그이들의 환영이 이지러진다. 전파간섭을 받은 흑백텔레비전 영상처럼, 찢어진 조각들이, 둥둥 떠다닌다. 조각난 시간에게, 조각난 삶에게, 조각난 죽음에게 말한다. 어디서, 그 무엇으로도, 다시 태어나지 않으리. 그대들도, 다시는, 생으로, 무참해지지 않기를.


이 생에 봄은 다시 오지 않을 텐데, 입춘이 오면, 나는 또, 봄을 기다리며, 기어이, 생을 이어갈 거라서, 밥숟가락 들 힘 남아 있는 한, 쌀 한 톨 삼켜 넣을 염치 남아 있는 한, 겨울로 향해 갈 거라서, 다음 소한과 대한 사이, 구태여 제문 읽듯, 혼잣말을 뇌까릴 거라서.


아아, 비루먹은 생이여, 살아 죽음에게 내어줄 숨이여.


_ 2024년 1월 23일, 생의 수몰지구에서 중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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