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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목제 Feb 01. 2024

날마다 깎여 나가는 존재로 서서,

2024년 2월 1일, 거센 눈보라와 난폭한 바다, 영하 1도~0도

또다시 어리석은 시간이 온다, 김은 갑자기 눈을 뜬다, 갑자기 그가 울음을 터뜨린다, 갑자기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예정된 무너짐은 얼마나 질서정연한가  
_ 기형도, <오후 4시의 희망> 부분




좌우 위아래로 빈자리가 보이는, 치아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비대칭적으로 배열된 흑백사진이 말하자면 내 상악과 하악을 두루 발가벗긴 모습이라 하길래, 파란 옷에 흰 마스크를 쓴 그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그 기괴한 형상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문득, 아침 먹고 땡, 노래가 귓전을 울리는 바람에, 비가 내리는 해골바가지 창문이 떠올라 실소를 머금었다. 창문 왼쪽 끝에서는 하늘 꼭대기가 아닌, 중간께 허공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고, 오른쪽 끝에서는 비가 대지 위에 닿지 못한 채 증발되어 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겠다 싶은 마음에 입이 저절로 헤 벌어졌다.


해골바가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 때문에 황홀해하고 있을 때, 파란 옷의 흰 마스크가 돌아와서는 내 마음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듯, 진짜 기적은 지금부터라고 선언했다. 머지않아, 왼쪽 끝과 오른쪽 끝에서 일어나던 이상 강우 현상이 사라지게 되리라는 거였다. 어느 경전에 나올 법한 예언자처럼, 웃지도 않고, 근엄하게 선언했기 때문에, 나는 그이의 예지 능력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순하게 받아들였다.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난 이제 늙어버렸다는 마음에 풀이 죽어 있었다. 젊은 날은 이제 정말로 가버렸으며, 죽은 가수의 노래 제목은 ‘마흔 즈음에’로 바뀌어야 마땅하다는 허튼소리나 내뱉고 있었다. 사십 대 중반이 될 무렵, 죽은 감나무처럼 맥없이 흔들리다 뿌리 뽑힌 첫 어금니를 내려다볼 때에는, 드디어 노화의 귀한 징표를 받은 선지자라도 된 기분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낡아가고 있다는 걸 확인하고 싶어 했다.


쉰이 되었을 때, 난 이제야말로 정말 늙어버렸다고 중얼거렸다. 종전 노화 선언을 아무렇지 않게 번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흔은 그다지 늙은 나이가 아니었다고, 아니, 그때는 젊은 시절이었다고 주장하며, 쉰을 기점으로 새로 받은 징표를 그 증거로 삼기까지 했다. 모든 존재는 존재함과 동시에 낡아가기 시작하는 거라, 낡아감을 새로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산출되는, 선언의 번복과 재제창을 몰염치로 규정할 필요는 없다고 자위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나는, 예순이 되어서도 다시 웅얼거릴 게 분명하다. 이제, 드디어, 완전히 늙어버렸다고. 물론, 십 년 전의 선언을 폐기하는 것도 잊지 않을 게다.


선언이 번복되고 폐기되는 과정에서, 창문 밖의 비도 서서히 그쳐 가겠지. 비가 그치면,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걸까. 왜 점심 먹고 땡,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왔을까. 삶에 쏟아져내리는 비가 그쳐야, 비로소 마지막 식사를 하고 생의 밤을 맞이할 수 있는 걸까. 해골바가지 노래에 그토록 심오한 삶의 비의가 숨어 있는 줄, 어린 나는 꿈에도 몰랐다. 운동장 흙바닥에 맨손으로 해골을 그리며 비교의 노래를 읊조릴 적에, 난 사랑니도 나지 않은 새앙쥐였으니까.


거센 눈보라가 휘날리며 바다가 뒤집히는 오늘 같은 날, 물끄러미 전경을 응시하다 보면, 내가 이 춥고 어둔 바닷가에 놓인 사물 가운데 하나로 느껴진다. 나는 눈비와 바닷바람과 모래에 부딪혀, 날마다 깎여 나가는 존재다. 새들은 낮은 데로 내려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종종거리고, 덩그러니 서 있는 낡은 트럭에는 주파수도 잡지 못하는 고물 라디오가 버려지지 못한 채 구겨져 있다. 새들은 언젠가, 사선을 긋는 저 진눈깨비처럼 부서질 것이고, 늙은 라디오는 주파수와 조우했던 마지막 기억을 더듬으며 산화할 것이다. 나무들은 각오를 다지듯, 의연하게 바람을 견디고 있지만, 끝내는, 부러져 버리겠지. 깎여 나가는 존재로 서서, 생이 허물어져 가는 걸 망연히 바라본다.


이상강우가 곧 그칠 거라는 예언자의 단언 때문이 아니다. 비교의 노래에 담긴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도 아니다. 반복되는 선언과 지리멸렬한 번복 때문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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