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식목제 Mar 06. 2024

슬픔에도 유령통이 있는 걸까

2024년 3월 6일, 봄비 혹은 마지막 겨울비, 1도~4도

설마, 이런 것도 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걸레질하는 몸이 들썩일 때, 벼락처럼, 가슴이 저려오는 일. 설마, 물걸레로도 잘 닦이지 않는, 바닥의 저 검은 자국 때문은 아니겠지. 몸짓을 멈춘 채 잠시 가슴 안쪽에서 퍼져 나오는 진동을 감각하다가, 불현듯, 깨닫는다. 이건, 지진이야. 켜켜이 쌓여 있던, 슬픔의 퇴적층이 솟아오르려는 거야. 잊고 있었구나. 낮과 밤을 끝없이 뒤치는, 오래된 생의 자전을 멈추지 않는 한, 마음의 지각이 꿈틀거리는 일도, 감정의 용암이 끓어오르는 일도, 막을 수 없다는 걸.


한때, 지진이 휩쓸고 가면, 고고학자처럼 쭈그리고 앉아, 모습을 드러낸 퇴적층을 긁어대곤 했다. 어떤 층은 너무 단단해서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지만, 또 다른 층에서는 손톱만으로도 쉽사리 생의 부스러기를 떨어뜨릴 수 있었다. 생의 흔적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서 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바로 어제 죽은 것처럼 또렷해서, 가끔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그를 부둥켜안은 채 눈물을 쏟아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도 꽤 오래된 일이라서, 요즈음은, 내심, 나는 수명이 다해 가는 행성이라고 느꼈다. 마침, 서로 고양이의 안부를 묻기도 하는, 미장원 원장이, 한 달 만에 만난 내게, 흰머리가 왜 이렇게 늘었느냐고 놀라움을 표한 터라, 그건 내가 점점 석회질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거라고,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던 참이었다.


그렇듯, 점차 식어가는 행성에서, 대규모 지각변동이 일어날 리 없었다. 허나, 섣부른 생각이었다. 어쩌면, 분명한 신호를 계속 무시해 왔는지도 모른다. 크고 작은 지진파가 계속 감지되는데도, 지진이 일어날 리 없어, 나는 식어가는 중이야, 둘러대기에 급급했던 거다. 그럼에도, 구차한 변명을, 하고 싶어진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무방비 상태로 지진이 급습해 오는 걸 느끼면서도, 진앙지가 저릿해오는 걸 감지하면서도, 슬픔의 근원을 알 수 없어 허허로워지는 일이 잦아지곤 했다. 혹, 착란은 아닐까. 슬픔을 놓지 못하는 질병은 아닐까. 오래전 지진으로 폐허가 된 자리에서, 환각처럼 진동이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이지? 걸레질을 끝낸 지 한참 되었는데도, 검은 얼룩을 마침내 닦아내었는데도, 여진처럼 퍼져 나가는 이 저릿함은 무엇이지? 슬픔에도 유령통이 있는 걸까. 가슴을 도려내도 사라지지 않는, 심장을 파내도 끝내 감지되는.

매거진의 이전글 목이 꺾인 새에게, 날아오르지 못한 삶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