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마음의 지도를 형성한 낱말들
가시내, 서리서리, 그리움, 저절로, 설레다, 짠하다, 아내, 가을, 넋, 술
모든 언어는 과오다. 나는 시 속의 모든 과오인 언어를 사랑한다. 언어는 최고의 상상이다. 그리고 시간의 언어는 언어가 아니다. 그것은 잠정적인 과오다. 수정될 과오. 그래서 최고의 상상인 언어가 일시적인 언어가 되어도 만족할 줄 안다.
실감이 안 나는 생경한 낱말들을 의식적으로 써볼 때가 간혹 있다. 제3인도교의 과오를 저지르는 식의 억지를 해보는 것이다. 이것은 구태여 말하자면 진공(眞空)의 언어다. 이런 진공의 언어 속에 어떤 순수한 현대성을 찾아볼 수 없을까? 양자가 부합되는 교차점에서 시의 본질인 냉혹한 영원성을 구출해 낼 수 없을까?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말들은 아무래도 내가 어렸을 때에 들은 말들이다. 우리 아버지는 상인이라 나는 어려서 서울 아래대의 장사꾼 말들을 자연히 많이 배웠다. ‘마수걸이’, ‘에누리’, ‘색주가’, ‘은근짜’, ‘군것질’, ‘총채’ 같은 낱말 속에는 하나하나 어린 시절의 역사가 스며 있고 신화가 담겨 있다. 또한 ‘글방’, ‘서산대’, ‘벼룻돌’, ‘부싯돌’ 등도 그렇다.
* 아래대 _ 장사꾼들이 말하던, 동대문에서 광화문에 이르는 지역. 맞은편 서울 서북 지역은 ‘우대’.(고종석의 설명을 인용.)
그러나 이런 향수 어린 말들은, 현대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의 정의가 바뀌어지듯이, 진정한 아름다운 말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런 것을 아무리 열거해보았대야, 개인적인 취미나 감상밖에 되지는 않고, 보편적인 언어미가 아닌 회고미학에 떨어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다.
그리다, 에다, 보듬다, 사랑하다, 삶, 밥, 마음, 아름다움, 슬픔, 얼굴
덧 1) 왕성하게 집필하던 시기를 지난 이후의 고종석의 행보에 대해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허나, 여기서는 논외로 했다.
덧 2) 내게 가장 마음이 쓰이는 말 열 개를 골라놓고 보니, 언제 기회가 되면, 그 말들의 풍경에 대해 써봐야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