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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구오 Apr 06. 2023

제주일지 I

미스테리 장르의 게스트하우스 첫 날

       처음 제주도에 온 날은 공포 그 자체였다. 귀신은 믿지 않으나, 그것은 현실 스릴러 그 자체였다. 그 날은 날도 맑은 어느 평일 오후였다. 큰 캐리어를 들고 버스를 탄 것부터 쉽지 않은 여정의 시작이었다. 하교하는 고등학생 무리에 낑긴 나는 이동식 사우나를 체험하며 겨우 목적지에 내렸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자 한 남성분이 나와서 "예약한 분이냐"고 물으셨다. 스텝으로 왔다고 했더니 연락하던 분에게 연락해보라(?)고 했다. 매니저님께 문자를 드리자 방 배정을 안내하는 답문이 왔다. 짐을 이끌고 방에 도착하자 무언가 공허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제 뭘 하지? 였다. 매니저님께 '이제 무엇을 해야 하냐'고 아주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보냈는데, 글쎄 이런 답장이 왔다.


       "그냥 쉬시면 됩니다."


       네? 그냥 쉬라니요. 심지어 아직 정식 개장 전이라는 소식까지 듣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아까 마주친 남성분이 머리 속에 스쳤다. 그 사람은 누구였을까. 왜 개장도 하지 않은 게스트하우스에 온 사람에게 예약한 분이냐고 물었을까. 할 일이 없어진 나는 라운지로 나가봤으나 그 남성분을 포함하여 사람이라고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라운지에는 쓰레기가 널려있었고, 주방은 며칠 되어보이는 설거지 더미로 가득했다. 여기는 대체 뭘 하는 곳일까.


       일단 밥은 먹어야 하니 혼자 저녁을 먹고 돌아왔으나, 사람은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다른 스텝들도 매니저도 없었다. 스텝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타고난 내향형 인간이었던 나는 얼굴도 모르는 이들에게 어디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더 이상했던 것은 입구에 신발이 정말 많았다는 점이다. 눈대중으로 대략 30켤레는 되어보였다. 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게스트하우스에 있다면, 왜 지금 아무런 인기척도 없는 것일까? 밀실살인 추리소설 초반부 설정에 제대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두려움에 떨면서 첫 날 밤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나는 가장 먼저 매니저님에게 문자를 보내서 만나자고 했다. 일단 설명을 듣고 싶었다. 어제 그 남자는 누군지, 왜 사람이 없는지, 저 신발들의 주인은 누구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매니저는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납득이 가지 않으면 당장 이 곳을 떠나 공항에서 노숙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매니저님과 약속을 잡았다. 1시간 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매니저는 생각보다 앳되어 보이는 여성분 (이하 N양)이셨다. N양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듣자 모든 의심거리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지금은 전 사장으로부터 게스트하우스를 인수받는 과정이었고, 그래서 전 게스트하우스 식구들의 짐이 다 정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급하게 인수하느라 이미 예약받은 소수의 손님들에게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남성분은 전 사장이었고, 신발들도 사장님의 것이었다는 결말이었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점은 청소 상태였다. 라운지와 주방이 온통 더러운 이유는 전 사장과 그의 친구들이 어지럽힌 흔적이었는데, 그들은 그걸 치우지도 않고 방치하고 있었다. N양은 그들이 알아서 치울 때까지 기다리면서 일종의 '기싸움'을 하고 있었으나, 개장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까지 그들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어려보이는 N양이 왠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청소부터 하자고,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의심과 함께 짐을 풀고, 그 곳에서 제주도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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