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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young Dec 23. 2021

내가 명품백을 사는 법


나는 1,000만 원짜리 명품 가방 속에 5만 원을 넣어 다니는 사람이기보다 5만 원짜리 가방 속에 1,000만 원을 넣어 다니는 사람이기를 원한다.


-유대열, 나는 오늘도 경제적 자유를 꿈꾼다 중에서


물론이다. 둘 중에 고르라면 당연히 나도 그렇다. 하지만 500만 원 짜리 가방 속에 5백 5만 원을 넣고 다니는 사람을 꿈꾼다는 게 비극의 시작이라면 시작이랄까.


“나 진짜 산다”

“필요하면 사야지.”

선전포고는 약 1년 전부터였다.


6개월도 더 지나서

“진짜 살 거라고, 비싸다고, 알겠어?”

“응, 사. 괜찮다니까. 그렇게 노래를 부르는데 하나 사야지”


급기야 한 달 전쯤에는

“놀라지마. 진짜 사”

“으이구, 제발 쫌 사라니까 그냥!”


누군들 사고 싶지 않아서 영혼 없는 대답을 내놓을 게 뻔한 남편에게 묻고 또 물었을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브랜드 떼고 가격 떼고 고르래도 그 중에서 제일 비싼 물건을 딱 집어 낼 수 있는 안목의 소유자이며, 평생 빠리빠리 노래를 부르다 급기야 언어 체력 담력 다 안 되는 마흔 다섯의 나이에 홀로 첫 파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다. 주전자 하나를 사는데 2개월, 렌지다이를 고르는 데 약 3개월, 검정 양말 가운데 나한테 꼭 맞는 검정 양말을 장바구니에 담는데 꼬박 이틀이 걸리는 결정장애인이다. 마지막으로 8년째 깨알같이 가계부를 적고 있는 배테랑 주부(?)이기까지 하다.


그러니 1년이 대수겠는가.


어느 날은 이 돈이면 애들 학원비가 몇 달치인지 따져보다가 포기하고, 중고 스파크도 한 대 사겠다며 소스라치게 놀라고, 또 어느 날은 이거 하나 든다고 내가 획기적으로 고급스러워지겠냐며 자기를 연민했다. 그러다가 또 언제는 직장생활에 육아에 내가 얼마나 개고생을 하는데 이거 하나 못 지르냐며 욱했다. 곧 퇴사할 건데 그땐 더 사기 어려워질 거라고  재촉도 했다.  


어제도 그런 날들 중의 하루였다. 단지 연차를 내고 뜨신 방바닥에 늘러 붙어 인스타를 보고 있었다는 게 다를 뿐이었다. 인스타로 크리스마스 장식이 멋진 런던도 갔다가 독일 뮌헨에도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 사는 이쁜 애기 엄마네도 들렀다. 그런데 갑자기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이 라방을 시작했다는 신호가 떴다. 순식간에 600여 명이 댓글을 다는 라방에서 부시시한 헤어스타일로 스웻셔츠 멋지게 입는 법을 알려주는데 진짜 별 게 없었다. 나도 알고 너도 알지만 저런 스타일이 안 만들어지는 건 아이템이 충분치 않아서일 뿐이었다. 이거 사면 저게 없고 저거 사면 이게 또 부족하니 완성이 안된다. 게다가 나는 값나가는 가방 하나도 없다.


‘그래, 내일은 매장에 가서 마지막으로 딱 한번만 더 메보는 거야. 저번에는 여름 옷 입고 메봤으니까 이번에는 겨울 옷을 입고 잘 어울리나 보는 거지. 그러면 결정이 훨씬 쉬워질 거야.’


다음 날 점심시간, 뛰다시피 백화점 매장에 들어섰는데 삐이-소리가 요란했다. 웨이팅 보드에 예약을 하셨냐며 직원이 싱긋 웃는다.  앞에 6, 대기 시간만 30. 그냥 갈까? 가서 밥이나 먹을까 고민하며 꼬박 28분을 기다려  아이를 만났다. 거울 앞에서 살포시 들어봤다가 쇼케이스 위에 다시 살포시 내려놓으려는 그 순간,   뒤로 누군가  지나가는  느껴졌다. 매장 직원이 웨이팅을 하셔야하려다 말고, “어머,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반긴다.


“어, 저번에 내가 맡겼던 거 찾을 수 있을까?”

어제 라방  한혜연 씨였다.


분명히 66이랬는데 생각보다 훨씬 슬림하고 키도 컸다. 눈이 마주친 김에 ‘어제 라방  봤어요라고 오지랖을  뻔했으나 어찌    입에서는 


, 그냥 이거 할게요”

충동 구매라도 하는 사람처럼 쿨하게 매장 직원에게 말이 나갔다.


아주 잠시 후,

“그런데요, 할인을 제일 많이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묻긴 했지만.


내 생애 가장 비싼 가방을 최고의 혜택가로 구매하기 위해 생전 가지도 않는 이 백화점의 카드를 새로 발급받으며 남편한테 톡을 보냈다.

 “지금 자기가 사라고 한 가방 샀어.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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