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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young Dec 02. 2021

그 겨울의 밥상




생각지도 않게 맥주 두 캔을 먹고 자선가, 알람을 몇 번이나 끄고도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내가 이불 속에서 10분을 더 뭉개면 남편이나 아이들의 기상 시간이 덩달아 늦어지고 서로 머리를 감거나 면도를 하는 타이밍이 꼬이면서 아침 식사가 허술해지고 등교와 출근시간도 저만치 밀린다. 


한 겨울, 진작 잠에서 깼는데도 뜨끈한 아랫목에 그대로 누워 있는 아침이 나에게도 있었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단정하고 경쾌한 도마소리를 들으면서.  

‘독독독독독, 우리 딸, 잘 잤니?’

‘독독독독독독, 오늘도 학교 가야지?’

‘독독독독독, 다 괜찮아. 엄마가 있어.’

오래된 나무 도마 위에 무와 배추, 양파와 호박을 써는 엄마의 칼질은 하루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오늘도 나의 하루가 무사할 거라는 신호 같았다.  


아빠가 마루까지 떠다 주는 따끈한 대야 물에 세수를 하고 긴 파마머리를 반으로 묶어 멋을 낸 다음 다시 아랫목에 앉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밝은 버건디 컬러의 나무 밥상이 들어오고 아침식사가 차려진다. 압력 밥솥에 금방 지은 밥, 금방 끓인 겨울 배추국, 금방 김장독에서 꺼내 썬 김치. 방금 볶은 오뎅. 고마울 것도 새로울 것도 없이 매일 차려지는 당연한 밥상. 


그걸 먹고 나는 교내 글짓기 대회에 나가고, 칠판에 떠드는 아이의 이름을 적고, 불조심 포스터를 그리고, 뜀틀을 넘었다. 먹고 자라고 먹고 자라서 급기야 10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지금의 엄마가 되었다.  


탁탁탁탁탁, 양파와 파를 썰고, 마늘을 다져 어제 인스타에서 본 레시피대로 순두부 계란국을 끓이고 황태채를 볶았다. 


“엄마, 국이 좀 닝닝한대. 이거 말고 딴 거 없어?” 

“그러게, 나도 좀 별로야.”

입 짧은 막내로도 모자라 큰 녀석까지 투정을 보탠다.


“그래? 처음 해본 거라 그런가? 어제 먹던 거 데워줄까?”


그런데 냉장고에서 사골국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우려다 말고 느닷없이 부아가 치민다.


“야, 맛있기만 한데 뭐가 어떻다는 거야? 니들은 아침상이 저절로 차려지는 줄 아니? 한번 해봐, 이게 쉽나?”


아이들은 아침 먹다 이게 왠 날벼락? 내지는 또 시작? 이냐는 표정으로 잽싸게 국을 비우고 스리슬쩍 책가방을 챙겨 사라진다. 뒤통수에 대고 나는 끝까지 퍼붓는다.


“내일부터 한번 굶어볼래? 친구들한테 한번 물어봐 봐. 이렇게 맨날 밥 차려 주는 엄마가 어디 흔한가?”


나는 그때의 엄마처럼 내복에 스웨터, 조끼까지 껴입어야 할 정도로 추운 부엌에 서있지 않다. 수도 하나가 없어서 마당에서 일일이 물을 떠다 쓰거나 갑자기 엘피지 가스가 떨어져 쩔쩔 맬 일도 없다. 그런데도 식구들의 입에 들어갈 한 끼 한 끼를 준비하는 일은 고되다. 정성과 사랑 없이는 국 한 그릇도, 반찬 하나도 차려지는 일이 없다.   


‘엄마, 왜 그랬어? 가끔은 좀 대충대충 넘어가지, 딸이 아무리 어리고 철 없어도 한번쯤은 엄마도 힘들다고 말하지. 그랬으면…’


때 되면 저절로 따박따박 차려지는 밥상에 얼마나 많은 사랑이 필요한지 이제야 안다. 겨우 늦잠 10분을 포기하고 닝닝한 순두부 계란국을 끓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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