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훈련소
논산에 있는 육군훈련소를 다녀왔습니다. 별점은 4점 드릴게요. 리뷰가 별로여서 조금 걱정했는데, 음식 맛은 무난하고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재방문 의사는 없습니다~ ^^
전문연구요원인 나는 보충역으로 분류되어 3주의 훈련소 과정을 수료해야 한다. 가끔 군 면제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머리 깎고 훈련도 받고, 병무청 관리 받으면서 복무 기간 채우고 할 거 다 했습니다. 흠흠. 물론 현역과 비교할 수는 없다. 나의 "군 생활", 그러니까 다or까를 준수하고 불침번을 서며 점호를 받고 빡빡이들로 가득한 낯선 공간에서 생활하고 훈련받는 기간은 훈련소의 3주가 전부. 현역 18개월의 군 생활과 비교하면 계산해보니 대략 24배 짧은 시간인데, 그 말은 내가 훈련소에서 보내는 1시간은 현역 누군가의 하루와 같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내가 군 생활에 대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같잖고 괘씸한 일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
어쩔건데. 군대 별 거 없던데요?
...죄송합니다. 나의 훈련소 생활은 별 것 없었습니다. 아픈 곳도 많고, 엄살은 더 많은 보충역 동기들과 우리에게 딱히 기대도 없고 악감정도 다행히 없는 조교와 교관들 덕분에, 훈련을 받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단체 생활에 불편한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남들도 다 하는 거니까, 나는 3주만 하는 거니까 하고 생각하니 견디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개중에는 다시는 상종하기 싫은 인간도 하나쯤은 있었으나, 대개는 좋은 사람들이었다.
첫 주말 휴대폰을 받자마자 부모님께 연락하고 찾아본 글이 있다.
그대는 군에서도 열심히 살아라
행정반이나 편안한 보직을 탐내지 말고
동료들 속에서도 열외 치지 말아라
똑같이 군복입고 똑같이 짬밥먹고
똑같이 땀흘리는 군대생활 속에서도
많이 배우고 가진 놈들의 치사한 처세 앞에
오직 성실성과 부지런한 노동으로만
당당하게 인정을 받아라
- 박노해, <썩으러 가는 길> 중에서
훈련소 생활 잘 한 것 같다. 체험판 군대지만 군가도 외우고, 훈련소 교회 가서 빡빡이 춤을 추며 실로암 찬양도 하고. 군데리아도 먹어보고, 화생방 가스 맛도 봤다. 총도 쏴보고 (훈련용이지만) 수류탄도 던져보고 군장도 행군 내내 들어봤다. 열외 없이 요령 없이, 못해본 것 없이, 아쉬움 없이 그냥 할만큼 한 것 같다. 학벌과 나이 덕을 안 봤을리 없겠지만 단 한번도 치사하게 처세하지 않았다. 모처럼 뇌 비우고 지냈지만 중요한 고민은 멈춘 적 없고, 추억도 낭만도 깨달음과 다짐도 많이 만들어왔다. 무엇보다, 다친 곳 없이 나왔다.
열심히 살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편지
훈련소 기간동안 쓴 편지지의 수를 다 합쳐보니 45장이었다. 3주동안, 하루 2장씩은 쓴 셈이다. 부모님께, 친구에게, 뜨락에게, 연구실 사람들과 교수님께 썼다. 수료식 이틀 전부터는 생활관을 함께 쓴 분대원들과, 심지어 소대장님께도 썼다. (마음의 편지 ㄷㄷ)
편지는 낭만이다. 휴대폰이라는 차갑고 편리한 도구가 있을 때는 외면 당하는 느리고 번거로운 수단. 그러나 편지에는 사랑이 늘 담겨있다. 연애편지든, 어버이날, 스승의날 편지든, 심지어 군대 간 친구에게 쓰는 위문 편지에도. 생각해보니 나는 위문 편지는 받지 못했다. (휴대폰 사용이 가능해져서 그렇다.) 열받네!! 많이 써줬었는데 못 돌려받았다.
아무튼, 답장을 기대하지 못해도 편지를 썼다. 사랑을 담아 썼다. 수신인을 생각하며, 오랜만에 중지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최대한 또박또박. 그렇게 편지를 쓰는 동안 행복했고, 그렇게 보낸 편지가 언제 도착할지 가늠하며 또 행복했다. 좋은 컨텐츠였다. 편지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는, 수신인과 나만의 비밀이다. (커버 이미지, 문뜨에게 쓴 편지 첫장만 빼고) 물론 받은 사람이 주위와 돌려 읽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비밀도 원래 그런 거니까. 비밀을 만드는 것, 그것도 낭만이지.
군대는 낭만 -이 아니지만, 다른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만드는 것은 낭만이다.
편지 쓰기는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