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윤석열 내란 사태를 돌아보며
선량한 일반 국민께 드리는 인사
어느덧 12월입니다. 2024년 올 한 해도 모두 고생 많으셨고, 특히 기말고사를 앞둔 학우분들께는 마지막까지 조금만 더 힘내시라고 응원을 보냅니다. 여러분의 2024년은 어떠셨나요? 저는 4월에 전문연구요원 기초군사훈련을 다녀왔고, 5월에는 오래 몸담았던 동아리에서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 올해 문학의 뜨락은 정말 GOAT였죠. 새로 들어온 친구들, 오랜만에 돌아온 녀석들. 하나같이 사랑스러운 문뜨 동인들 덕분에 행복할 수 있었던 한 해였습니다.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이쯤 하고, 저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죠. 올해의 빅 이벤트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요?
T1과 페이커가 작년에 이어 "또" 월즈 우승을 했네요. 대상혁. 저희 학교 기계공학과 권지용 교수님께서 7년 만에 컴백을 하셨고요. 아아,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 있었습니다. 이건 특히 뜻깊은 소식입니다. 문학의 뜨락에서 여름방학 때 소설 읽기 클럽이 있었는데, 그때 <채식주의자>를 읽고 한강 작가님의 글에 관심이 많이 높아졌었거든요. 노벨 문학상 소식을 들었을 때 너무 반갑고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를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며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강력한 시적 산문"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소년이 온다>에서는 8월의 광주를,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4월의 제주라는 대한민국 역사의 가슴 아픈 비극을 다루면서, 그 안에 놓였던 인간의 선량하고 연약한 내면을 문학적으로 잘 표현해 냈기 때문에 세계적인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90년대 끝무렵에 태어난 저는 그러한 종류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겪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국가원수가 자국민 일부를 반국가세력, 체제전복세력으로 규정하며 총구를 들이미는 일 따위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였을 겁니다. 12월 3일, 문학의 뜨락의 이번 학기 마지막 정모가 있던 날, 동아리방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긴급 담화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을 때에도 우리가 "에이 설마," "뭘 어쩔 건데," 하며 불안한 웃음을 내비칠 수 있었던 이유는요.
다시 들어도 믿기지 않는 소식에 "미친놈이네, 이거" 하며 분개하고, "나부터 잡아가라," 하며 엄포를 놓았지만 사실 저는 처음으로 두려웠습니다. 대통령의 잦은 “격노” 소식에도 코웃음 치며, 그저 참담한 마음으로 나라 걱정은 했지만 이번 일처럼 스스로와 친구, 가족, 이웃들의 안전을 걱정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겠다는 대통령의 선언에, 위반자에 대해서는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 및 '처단'한다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에. 처단, 여러분 처단이 얼마나 무서운 단어인지 아십니까? 결단을 내려 처치하거나 처분한다는 뜻이잖아요. 자칫하면 죽이겠다는 각오가 실린 단어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화려한 휴가>의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면서 입밖으로는 내지도 못할 무서운 상상을 많이 했습니다.
그날 밤 계엄군이 국회를 장악해서 정말로 비상계엄이 해제되지 못했더라면. 우리가 맞이하는 12월 4일 아침의 대한민국은 정말 다른 모습이었을 거예요. 전국민이 잠들지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았습니다. 국회의 빠른 결단 덕분에 다행히 큰 위기를 넘겼다고, 저는 진심으로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평소 같은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뉴스만 끄면 평화로운 일상이었어요. 그러면 끝난 걸까요? 저능하고 멍청한 윤석열과 똘마니들, 6시간 만에 싱겁게 끝나버린 뜻 모를 계엄 선포. 이쯤으로 조롱하고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해도 괜찮을까요?
말도 안 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2024년의 대한민국입니다. 김건희를 둘러싼 여러 스캔들과, 공정과 상식은 사라진 검찰의 비대칭적 수사와 기소. 설마, 설마 했던 계엄령 선포까지. 정말로 믿기지 않는 일들이 매일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어요. 관심을 가져주세요. 함께 감시해 주세요.
10년 전, 바다로 천천히 가라앉는 여객선 안에 타고 있던 또래 친구들의 '전원 구조' 소식이 거짓으로 드러나고, 사망자, 실종자가 끝 모르고 늘어나던 그날. 처음으로 무능한 정부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고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의 역사적 트라우마는 2년 전 시월에, 다시 보수 정권에서 반복되고 말았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또다시 우리 나이대의 젊은 청년들이 대거 목숨을 잃는 것을 보며 저는 우리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발, 저희 좀 살려주세요.
저는 우리가 다 함께 안녕히 2025년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같이 집회에 나가자고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 오늘의 대한민국에 눈 돌리지 말고, 똑똑히 지켜봐 주세요. 마지막으로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에게 표를 주었던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전대미문의 위협 앞에 국회로 향하지 않고 당사에 모여 동료 의원들이 잡혀가길 내심 기대했을 추경호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또 표를 줄 건가요? 그래도 한동훈은 달라, 미워도 다시 한번, 그렇다고 이재명한테 표를 줄 수는 없잖아, 하면서 또 정치경험 없는 검사 출신 대통령을 만들 건가요?
아직도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소수의 분들께는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지만, 지금 윤석열의 모습을 보며 후회하는 분들께 호소 드립니다. 제발 다음번에는 본인의 사람 보는 눈을 한 번만 재고해 주세요. 이렇게 못 할 줄은 몰랐지, 라는 쉬운 변명으로 나머지의 불행에 일조하지 말아주세요. 끝까지 모르겠다면 그냥 다음 투표 한 번은 쉬어가도 좋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2024년을 우리는 나중에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 그 해의 겨울을 우리는 무엇이었다고 평가하려나요. 추운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연말 안녕히 보내시고 돌아올 봄에 다시 만나면 좋겠습니다.
2024.12.05.
97년생 구인용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