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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맛있더라고요" 사위가 반한 외포리의 맛

친정엄마부터 이어진 젓갈 직판장 나들이... 즐겁게 이어지는 맛의 계보

by 김남정

친정엄마는 팔십이 넘은 나이에도 멸치 젓갈은 직접 내리신다. 손목에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시면서도, "이건 내가 해야 맛이 나지"라며 매년 손맛을 지키신다. 하지만 김장용 새우젓은 늘 말씀이 같다. 김장이 가까워지는 계절이면 엄마에게 어김없이 떠오르는 장소가 있다. 강화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 친정엄마는 늘 말씀하신다.



"새우젓은 외포리가 최고야."


IE003552963_STD.jpg ▲젓갈 수산물 직판장강화도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 ⓒ 김남정


우리 부부는 해마다 이맘때면 엄마를 모시고 외포항 젓갈 수산물 직판장을 찾았는데, 올해는 남편이 작은 수술을 해 막냇동생 부부가 대신 모시고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우리 몫의 젓갈을 잊지 않으시고 챙겨 오셨다. 그중에는 낙지탕탕이 젓갈과 명란이 나란히 있었다.


"이거 이 서방 좋아하지. 청양 고추, 생마늘 편 썰어 참기름 살짝 넣어 먹으면 맛있어."



수술한 사위 입맛을 생각해 사 온 감사한 선물이다. 나는 그 고마운 넉넉함을 작은딸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그 낙지탕탕이 젓갈... 사위가 너무 좋아해서 순식간에 다 먹었대요. 어디서 산 건지, 당장 다시 사러 가자고 난리야."



딸의 밝은 목소리 너머로 사위의 흡족한 표정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우리들의 젓갈 여행


그렇게 우리는 지난 주말에 작은딸 부부와 함께 외포리로 향했다. 주말 아침이라 교통체증을 걱정했지만 내비게이션 안내를 따르지 않고 남편이 알려준 외곽 도로(해안 도로)로 가니 수월했다. 엄마의 손맛이 닿아 있던 시장이 이제는 또 다른 세대의 입맛까지 이끄는 길이 되었다. 가족의 식탁을 중심으로 이어지는 맛의 계보가 세대를 건너 흐르는 장면을 보는 듯했다


신선한 젓갈들


외포항 직판장은 여전히 깔끔했다. 단단히 손질된 젓갈 항아리들이 줄지어 있고 새우젓과 낙지젓, 오징어젓은 윤기가 돌아보기만 해도 신선함이 느껴졌다. 꽃게, 새우, 반건조 생선들은 색이 곱고 질감이 살아 있어 얼마나 정성껏 관리되는 곳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호객을 위한 큰 소리 대신, 자신 있게 건네는 짤막한 설명과 미소가 오히려 믿음을 줬다. '아, 엄마가 왜 매년 이곳을 고집하시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이날 더 또렷하게 스며들었다.



시장 구경을 마친 뒤 항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람이 제법 차가워진 계절인데도 물빛은 투명하게 빛났다. 갈매기들이 낮게 선회하며 항구를 스쳐 지나갔다. 작은딸 부부는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사위는 새로 사 온 젓갈 봉지를 들고 흐뭇하게 걸었다.


"장모님 이거 진짜 맛있더라고요."


그의 말에 나는 괜히 뿌듯해졌다. 음식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움직이고, 마음을 이렇게 모아주기도 한다. 사위의 한마디가 시장의 바람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IE003552970_STD.jpg ▲젓갈 3종엄마가 사 오신 새우젓, 낙지 탕탕이 젓갈, 명란젓갈 ⓒ 김남정



세대로 이어지는 맛의 기억


엄마가 동생 부부와 다녀오시며 건네주신 젓갈 한 봉지가 우리 가족을 외포리로 데려오고,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멸치젓은 끝까지 직접 내리시겠지만, 새우젓만큼은 외포항이 최고라는 엄마의 확신이 이제는 딸에게 사위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엄마에게 배우고 딸에게 전하게 되는 이 흐름은 참 고운 일이다. 음식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정성, 오랜 시간을 지나온 삶의 흔적, 그리고 가족을 이어 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한다. 외포항 젓갈은 우리 집에서 오랫동안 '엄마의 부엌을 지키는 기준'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기준이 사위의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다 냄새가 은근히 따라오는 듯했다. 엄마가 그랬듯, 나도 언젠가 딸들에게 말할지도 모른다.


"김장 새우젓은 외포리가 최고야. 우리 엄마가 늘 그랬어."


그렇게 또 한 세대의 기억이 이어질 것이다.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318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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