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형님
겨우 2년 지어놓고 속단하긴 이르지만, 대자연은 노력에 합당한 결과물을 선물한다. 나의 노력은 선물을 받기엔 너무도 미흡하였고, 지속가능성을 의심받았다.
매년 하늘을 감동시키는 프로 농사꾼을 찾아야 했다.
예전부터 시즌이 되면 집에 고구마 박스가 날아왔다. 그것도 해남에서. 꾸준히 보내주시는 형님(?)이 계시는구나 싶었다. 아버지 인맥인가? 다짜고짜 전화를 걸었다.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고 무슨 용건이냐는 말씀에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렸다. 형님의 물건을 저희가 팔아도 되겠냐고.
호기롭게 전화드렸지만, 사실 나는 잔뜩 졸아서 바싹 오그라들어있었다. 형님이라고 들었지만 나보다 15살 연상이시다. 내가 왜 처음부터 형님이라고 했을까… 그래도 사장님은 너무 딱딱하고 삼촌이나 진배없다 해도 뉘앙스가 나이 들어 보인다. 그리고 우리가 팔아봤자 얼마나 팔겠는가? 20년 이상 농사를 지으시는 마당에 판로 하나 없겠는가. 매년 몇십 톤씩은 매진시키시겠지. 당연 거절하실 거라는 생각에 다음 타자는 어떻게 찾아야 하냐는 생각이 들기에도 잠시.
“그러세.”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다음은 우리의 마음이라도 꿰뚫어보셨는지 바통을 이어받듯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너희들이 주문을 받아서 우리한테 전달 주면, 그쪽으로 택배 보내주면 되는 거제?” “정산은 알아서 하면 되는 것이고, 자세한 건 만나서 얘기하세.”
운을 이렇게 초반에 다 써 버리면 오히려 불안한데… 당장 해남 출장이 잡혀버렸다. 찾아줄 때 가야지. 가는 김에 완도에서 김도 좀 보고 올 생각이었다.
3월이었다. 추위는 사그라들고, 운전할 때 너무 뜨겁지 말라는 듯 구름모자도 곳곳에 떠 있었다. 끝내주는 날씨였다. 설레발 쳤는지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점심을 먹었다.
해남은 아무 백반집에 들어가도 맛있다고? 과연 그러하다. 재료에 인색하지 않은 느낌. 감칠맛의 출처가 자연에서 왔다는 확신이 혀에 내리 꽂혔다. 시작부터 이렇게 좋으면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난 영화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듯, 일정이 매끄러웠다. 서울 놈 A에게 반전 따윈 없었다.
N형님은 먼저 올해 재배가 예상되는 품목을 알려주셨다. 초당옥수수, 찰옥수수, 홍감자, 밤고구마, 단호박, 쌀, 배추, 무, 참깨, 들깨, 홍고추, 서리태… 겨울까진 쉴틈이 없겠군.
픽업트럭에 올라타 재배 중인 초당옥수수밭으로 이동했다. 옥수수보단 시금치 같은 난쟁이 풀들이 오와 열을 맞추고 있었다. 3개월 뒤면 인터스텔라의 옥수수밭 같은 장관을 연출하겠만 지금 이 순간만 할까?
하늘을 감동시키는 밭은 이런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