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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 Oct 24. 2022

대파

이 아이가 만만 하나요?

“야채를 심어서 팔아보자.” 2021년 봄, 첫 농사를 짓기 전 형이 건넨 한마디. 무엇 때문에? 애초에 자신도 없었고 하기도 싫었다. 주말농장이라니. 주말에는 느지막하게 일어나서 아점 먹으면서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보는 것이 행복 아닌가? 밭이 집 앞에 있는 것도 아니고 차 타고 20분 정도는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매일 가기도 힘들고, 농사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애써 머리에 상기하며 거절 거리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마침 나는 금주 반년차에 접어들었고 건강을 위해 운동 겸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다..

처음 심은 청갓에서 제품 아이디어를 얻었고, 수도(水道) 없는 농사의 고됨을 배웠다. 자율주행 시대에 양동이 두 개로 냇가에서 물을 퍼오다니, 기원전 나일강 유역이 따로 없군. 뿌린 만큼 열매를 거둔다. 기껏해야 주 2회 정도 방문해서 마지못해 짓는 농사에 하늘은 그에 합당한 결과들을 내주었다. 각종 허브들은 너무 자라 외계인이 되어버리고, 상추는 처치곤란일 정도로 과하게 자라났다. 오이와 가지는 비뚤비뚤하고, 고추는 붉어지기 전에 곪아 터지기 일쑤였다. 그나마 마트 가판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게 생긴 아이가 대파 정도?

그래 이왕 시작한 거 얘라도 팔아보자. 역시나 하늘의 평등함을 피하지 못해 나뭇가지 마냥 여기저기 뻗쳐 있었으나, 겉대를 다듬으니 제법 모양새가 나왔다. 마트처럼 대파용 비닐봉지를 주문했다. 최소 수량이 500장이네… 1장에 1단이 들어가니 평생 쓰겠구나 싶었다. 그냥 넣으면 밋밋하니 뭔가 꾸밀 것이 필요했다. 그렇지 않아도 없어 보이는데 눈속임(?)까진 아니어도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던가.

간단히 대파로 캐릭터를 동반자님께 디자인을 의뢰하였다. 역시 전공자, 내가 그린 혹성 파파루(?)에 사는 외계인이 귀여운 ‘월하 대파’ 캐릭터로 환골탈태하였다. 와 이 정도면 팔아도 양심에 찔리지 않겠는데? 당시에는 사업자가 없어서 스마트스토에서 판매할 수 없었다. 게다가 ‘가는 도중 파손되면?’, ‘너무 많이 주문 들어오면 어쩌지?’라는 행복 회로에 취한 건방진 생각도 들었다. 그럼 당근 마켓에 올려볼까? 검색해보니 대파를 판매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무료 나눔이었지만… 당근 마켓에 올리니 신기하게도 주문이 들어왔다. 가격은 1단에 3천 원. 당시 마트가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아마추어로서의 양심이었을까? 돈을 벌기보다 경험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직접 생산한 농산물을 파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반려자님의 월하대파 캐릭터 :)

주문 주시는 분들은 모두 어머님들이셨다. 합리적인 가격에 직접 집 앞까지 가져다준다. 물건을 받으신 어머님들의 만족도는 하늘을 찔렀다.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의 백종원 님께서 “두 개 시킬걸.” “AC 곱빼기 시킬걸.” 하듯이 좀 더 주문할걸 못내 아쉬워하는 모습에 소소한 기쁨을 맛보았다. 배달이 너무 힘들었거든. 운송업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주문 후 여럿 후회하시는 백종원 님 (tvN스트리트푸드파이터)

그렇게 순조롭게 팔릴 것 같았던 대파는 1주일 이상 판매하지 못하였다. 브레이크를 건 것은 당근. 아마추어가 직접 키운 농산물을 파는 것은 규칙에 위배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네 게시판에 올리라고 한다. 거기 아무도 안보던데… 그렇게 2회 경고 먹을 때까지 개기다가, 3회째면 강퇴라는 통보를 받고 판매를 중단하였다. 소소하게 자본주의의 위력을 맛보았다.

매일 지극정성으로 돌보지 못하는 농사는 안 짓느니만 못하다. 반대로 정성을 쏟을 수 있다면 그에 합당한 결과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프로(?) 농사꾼을 찾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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