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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Mar 08. 2021

경칩驚蟄

03.05.(양력), 태양 황경 345°

‘봄이 되어 겨울잠을 자던 동물이 깨어난다’는 뜻을 지닌 절기이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는 경칩 이후 갓 나온 벌레나 갓 자라는 풀이 상하지 않도록 불을 놓지 말라는 금령을 내리기도 했다. 경칩이 지나면 대동강 물이 풀린다고 할 정도로 완연한 봄을 느끼는 때이며,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하여 벽을 바르거나 담을 쌓기도 했다. 보리 싹의 성장으로 그해 농사를 예측하기도 하고, 남부지방에서는 고로쇠나무의 수액을 받아 마시는데, 위장병이나 속병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몇 달 전 노트북 충전기가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연결 부위가 헐거워졌는지 단자를 손으로 꾹 누르고 있으면 충전이 되는데 손을 떼면 충전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손으로 누르고 있을 수도 없고, 그냥 누르는 정도가 아니라 있는 힘껏 세게 눌러야 겨우 전기가 통하니 손도 아프고 해서 충전기를 새로 주문했다. 이틀 후에 도착 예정이었는데, 아마도 그 이틀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애타게 뭔가를 쓰고 싶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때 노트북이 아닌 노트에 끼적여놓았던 글을 오늘 읽어보았다.

     

노트북이 있어도 열심히 쓰는 건 아니지만 노트북이 없으니 괜히 더 쓰고 싶어진다. 언제라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쓰게 되지만 아예 못 쓴다고 생각하면 더 쓰고 싶어지는 이 심보를 잘 기억해 뒀다가 글 쓰기 싫어질 때마다 곱씹어야지. (2020. 9. 23.) 


그때 펜으로라도 기록해두길 잘 한 모양이다. 바로 지금이야말로 간절히 글 쓰고 싶었던 그 순간을 곱씹기 좋은 때니까. 그러니까 요즘 나는 글쓰기에 대한 회의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중이다. 요즘이라고 하기엔 거의 만성에 가깝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 좀 달랐다. 지금까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이 소규모 글쓰기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걸 완전하게 알아버린 느낌이랄까. 사실 이 고민도 예전부터 했던 것 같다. 적당히 무시한 채 밀고 나갔을 뿐.


노트에는 그때 보았던 영화의 기록도 담겨 있었다. 새벽에 글을 쓰다가 어딘가 적적하고 허전한 기분에 아이패드로 영화를 찾기 시작했다. 글을 쓸 땐 음악도 듣지 않는데 영화를 틀어놓을 생각을 하다니. 글을 쓰겠다는 건지 그저 뜬눈으로 밤을 보내겠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은 왠지 그러고 싶었다. 넷플릭스와 왓챠를 가로지르며 볼 만한 영화를 찾다가 〈스탠바이, 웬디〉를 발견했다. 늘 그렇듯 포스터와 줄거리 몇 줄이 영화 선택에 도움이 되었다. 이번에는 집중해서 보고 싶은 영화가 아닌 그저 배경으로 틀어놓기 좋은 영화가 필요하니 거기에 딱 알맞은 것으로.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 시작 5분 만에 홀딱 빠져들어 보다가 후반에는 눈물을 뚝뚝 흘리게 될 줄은 몰랐다.


21살 웬디의 꿈은 작가다. 트레키¹이기도 한 웬디는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주최한 〈스타트렉〉 시나리오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완성했고, 마감 기한을 지키기 위해 영화사에 직접 찾아가기로 결심한다. 웬디에겐 약간의 자폐가 있다. 재활센터에서 지내며 보호를 받고 있었기에 혼자서 영화사가 있는 LA까지 가는 건 엄청난 모험이었다. 다행인지 아닌지 집을 나서는 웬디를 반려견 피트가 따라다. 정확히 영화 시작 5분 만이었고, 여기서부터 마치 내 옆자리에 피트가 앉아 있는 것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400쪽이 넘는 두툼한 원고를 들고 LA까지 가는 도중 우여곡절을 겪는 웬디의 이야기가 영화의 큰 줄기다. 가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지만 웬디에겐 마감 시간 안에 원고를 제출하는 것만이 목적이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걸어간다. 급기야 사고로 원고의 절반 이상을 분실하게 된 순간에도 웬디는 근처에서 구한 이면지 위에 펜으로 시나리오를 써 나가기 시작한다……. 와, 어떻게 이런 장면이 눈앞에 펼쳐질 수가 있지? 그날 새벽, 그렇잖아도 노트북을 사용할 수 없어서 노트에 펜으로 적어 내려가던 중에 영화에서도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물론 이미 나는 손에서 펜을 내려놓은 지 오래였지만.


원고가 반 이상 날아가 버렸지만 다행히도 마감 시간은 아직 남아 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한탄하거나 울거나 그 길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 순간 다시 쓰기 시작한 웬디를 보자 두 손에 응원봉을 들고 목이 쉬어라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아올랐다. 끝내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함께 뛰고 싶어졌다.


함장님, 논리적인 결론은 단 하나, 전진입니다.

Captain, there is only one logical direction in which to go : forward.


길도 잃고, 돈도 잃고, 원고까지 잃은 웬디를 일으켜 세운 건 웬디 자신이 쓴 시나리오 대사였다. 광활한 우주에서 길을 잃은 동행의 대화이거나, 이미 헤어진 일행에게 끊임없이 보내는 송신의 내용인지도 모른다. 침착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손으로 원고를 써 나가는 웬디와 어둡고 빛나는 우주가 겹쳐지는 이 장면도 물론 인상적이었지만 눈물을 뚝뚝 흘리게 만든 압도적 장면은 따로 있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언어’ 때문이었다. (※여기까지 읽고 혹시라도 이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면, 그리고 혹시라도 감정적 스포일러를 당하고 싶지 않으시다면 여기서 멈추시기를 권합니다.)


웬디를 쫓던 경찰과, 숨어 있는 웬디가 만나는 장면이었다. 웬디의 차림을 보고 단박에 트레키인 것을 눈치 챈 경찰은 조심스럽게 클링온어²로 대화를 시도한다. 이에 마음을 놓았는지 클링온어로 응답하며 다가오는 웬디. 경계를 해제한 두 트레키가 만나 인사를 한다. 클링온어를 들어보기는커녕 〈스타트렉〉도 제대로 보지 않은 나는 이 장면에서 트레키처럼 가슴이 벅차올라 울어버렸다. 그냥 우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엉엉 울었다. 엉엉, 훌쩍훌쩍, 엉엉.  


지금도 그때 느닷없이 울었던 게 생각난다. 따지고 보면 웃긴 장면에 가까워서 울면서도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던 기억. 아마도 영화 초반부터 차곡차곡 쌓여온 감정이 그 순간 터져 나온 거겠지. 웬디의 꿈이 이뤄지기까지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그런 웬디의 세계를 이해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만으로 그 인생은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까. 그런 웬디라면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언젠가는 자신의 꿈에 닿아 있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을까. 이런 저런 이유를 찾아보지만 정말 왜 울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혼자였기 망정이지 박수영이 옆에 있었다면 분명히 놀렸을 거야. 그래서인지 요즘도 영화는 혼자 볼 때가 제맛이다.


그렇다면 웬디는 어떤 시나리오를 썼을까. 어쩌다 동행하게 된 할머니에게 웬디가 시나리오 줄거리를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오래전에 사라진 문화인 ‘농담’을 해부학적으로 연구해서 유머 감각을 갖는 법을 발견하는 이야기였다. 홀로그램으로 남아 있는 옛 자료를 토대로 농담의 각 부분과 표정을 연결해서 유머 감각을 과학 공식으로 푼다니, 이거 너무 재밌잖아! 기발한 이야기만큼이나 마음을 끌었던 건 웬디의 태도였다. 자신을 ‘작가’라고 떳떳하게 소개하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해 일말의 의심이나 주저 없이 확신 있고 당당하게 말하는 태도.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자신의 글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었던 거다.


마침내 영화사에 도착한 웬디는 담당 직원에게 원고를 전하려 한다. 직원은 무심하게도 우편 접수만 받고 있으니 그냥 돌아가라고 말한다. 웬디는 당황한다. 여기까지 가지고 오는 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는데 이게 지금 무슨 소린가. 어떤 일을 당해도 침착하게 버텨냈던 웬디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주 인간적으로 폭발한다. 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당신이 알아! 생각하면서 보낸 낮과 밤이 얼만데! (영화에선 존댓말로 자막이 나왔지만 영어에 존대가 있을 리가.) 그리고는 다른 우편물이 들어 있는 통 속에 자신의 원고를 쏙 넣어버린다.



웬디의 시나리오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영화 마지막에 나온다. 하지만 여기까지 보았다면 시나리오의 당선 여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진다. 하나의 이야기를 구상하고 그것을 한 편의 글로 완성해내는 과정이야말로 돌이켜보면 작가가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환희의 경험일 테니까.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웬디를 지켜준 것도 결국 자신의 작품 아니었나. 그 순간만 기억한다면 다시 쓸 수 있다.    


요즘 나를 주춤하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는 일상. 고립된 채 제자리만 맴돌고 있거나, 여전히 세상물정 모르는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는 마음. 내가 쓰고 싶은 그 글을 끝내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나열하고 보니 형체가 없는 것뿐이네. 누가 노트북을 고장 낸 것도 아니고, 케이블 끈으로 내 손발을 묶어놓은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찾아볼 수 있고, 누구에게든 도움을 청할 수 있는데 왜. 쓰지 않아도 되는 이유 백 가지 대신 꼭 써야만 하는 이유 한 가지만 생각하자.  


연재를 해보겠다고 공표를 날린 건 어떻게든 스스로에게 써야 할 이유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어쩌면 그날 꿈을 잘못 꿨거나 단지 그날만 쓰고 싶었던 뭔가가 있었던 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미 약속한걸. 그렇게 지난해 동지를 보냈고, 소한, 대한, 입춘, 우수를 지나 경칩을 보낸다. 새로운 절기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던 건 함정이지만 이렇게나마 절기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어서 한편으론 다행이다. <끝>



1. 〈스타트렉〉의 열성적인 팬을 지칭하는 말. 나이, 성별, 국적과 관계 없이 전 세계에 포진해 있다.


2. 〈스타트렉〉의 클링온들이 쓰는 언어.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언어학자에게 의뢰하여 어휘, 문법, 발음 등을 정립해 실제로 사용 가능한 인공 언어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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