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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Mar 20. 2021

춘분春分

03.20.(양력), 태양 황경 0°

봄의 한가운데로, 밤낮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의 길이가 같은 절기이다. 추분과 함께 태양이 지구의 적도 위에 있는 날이어서 중춘仲春 또는 중양仲陽이라고도 한다. 춘분 기간에는 제비도 남쪽에서 날아오고, 우레 소리가 들려오며, 그해 처음 번개가 친다고 했다. 또한 이날의 날씨로 그해 농사를 점치기도 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24절기가 고대 중국에서 시작된 건 알고 있었지만 2016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사실은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¹ 중국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날씨와는 차이가 있다지만 나는 특별히 절기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겨울 한복판에서 생뚱맞게 입춘(2.3)을 맞이해도 아무 의심 없이 이제 봄이 시작된 거라 믿었고, 연일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다가도 처서(8.23)가 지나면 희한하게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이 느껴졌다. 여름 대신 가을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리던 시절에는 이처럼 한 박자 먼저 찾아와주는 절기가 고맙기도 했다. 세상에, 기다릴 게 없어서 계절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니. 요즘은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절을 다 좋아한다. 살갗으로 느껴지는 저마다의 날씨와 기후가 나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든다. 오죽하면 사계절도 모자라서 24절기를 나누어 세고 있지 않은가.  


작년 하반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집에서 일하고 있다. 즐겨 찾던 카페에도 잘 가지 않는다. 거리두기 단계가 2.5에서 2단계로 내려갔을 때 만세를 외치며 당장이라도 카페에 갈 것처럼 들떠 있었지만 실제로 이어지진 않았다. 대부분은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내려 마시면서 머릿속 돼지저금통에 5천 원짜리 지폐를 쏘옥 집어넣는 상상을 한다. 두유와 탄산수를 대량 구입해 냉장고를 채워두는 습관도 생겼다. 이제 카페는 기분전환 겸 잠시 들르는 곳이 되었다. 정말 아끼고 아껴 바깥 공기를 쐬고 싶을 때, 사람들의 소곤거리는 백색 소음을 듣고 싶을 때만 찾고 있다. 코로나는 카페 생활자를 집순이로 바꾸어 놓았고, 이따금 찾아오는 외출의 기회를 더욱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하게 만들었다.


임시제본소의 작년 매출은 재작년 매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매출이란 단어를 쓰기가 왠지 부끄러울 정도로 적은 규모의 사업이지만 어쨌든 매출이 있으니 때마다 건강보험료 납부 지로가 날아오는 거겠지. 영세 소상공인으로 분류되어 코로나 지원금도 받았지만 속없이 기쁘지만은 않았다. 줄어든 매출도 걱정이고 앞으로도 문제였다.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돈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적어도 계속해서 출판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 노후까진 모르겠고 박수영이 회사에서 나와 자유의 몸이 될 때를 대비하고 싶기도 다. 그러려면 나 혼자서도 두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어야 한다. 아무튼 책을 팔아 부자가 되는 그날까지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거나 다른 형태로 대신할 수 있는 지출을 삼가려 한다. 출판 비수기와 묘하게 겹쳐서 찾아온 코로나는 1인 출판사업자를 집순이에 이어 짠순이로 만들었다.  


어제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딱 그동안에만 짧게 통화하려고 걸었는데 밥 제때 챙겨 먹고 실비보험에 꼭 가입하라는 얘기를 듣다 보니 삼십 분이 지나 있었다. 끊으려던 참에 엄마는 옆에 있던 아빠도 바꿔주었다. “어, 일은 잘 되고 있나?” 아빠는 나와 통화할 때마다 이 질문을 하는데 말투가 꼭 “어, 강사장~ 사업은 잘 되고 있나?” 같아서 좀 웃기기도 하고, 그렇게 거창한 게 아닌데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거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냥 계속 쓰고 있다고 말하면 그걸 또 좋은 뜻으로 받아들인다. 아빠는 갑자기 생각난 듯 나를 낳기 직전에 꾸었다는 꿈 얘기를 해주었다. 커다란 봉황이 날아와 아빠 품에 안겼는데 날개를 하도 퍼덕거려서 애를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 엄청난 꿈을 꾸었으니 분명히 내게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 얘기를 어째서 40년 넘게 한 번도 하지 않다가 이제 하냐고 물어보니 너무 어마어마한 꿈이어서 발설하면 효험이 떨어질까 봐 안 했는데 시간이 하도 흘러 까먹었다는 거다. 음. 봉황이라……. 아빠는 지금 차곡차곡 해 놓으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말을, 참으로 교과서적이어서 오히려 장난 같은 말을 농담 한마디 섞지 않고 진심으로 말했다. 그것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농담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엔 나도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앞으로도 믿을 건 그것밖에 없겠지.    


지난 1월에는 유어마인드에서 한 통의 메일을 받았다. 이벤트로 입고 제작자의 판매용 책갈피를 전시하려고 하는데 참여 유무를 묻는 메일이었다. 책갈피라면 돈 주고 사본 적이 없는 내가 어떻게 남이 돈 주고 사고 싶게 만드는 책갈피를 만들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면서도, 어떤 책갈피를 만들어야 누군가 그것을 사고 싶어 할까 잠시 궁리해보기도 했다. 결국에는 쓰레기를 만들게 될까 봐 하루 만에 거절했는데 나중에 참여 작가들이 만든 책갈피를 보자 그때 거절하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내 머리론 생각해낼 수 없는 작품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어째서 책갈피를 공짜로 얻어 쓰기만 했을까. 한 번 쓰고 버리는 거라고만 생각했을까. 모든 책갈피에는 책을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에 관한 질문과 대답이 들어 있었다. 제작자의 정체성과 지향점, 유머와 재치, 귀여움과 깜찍함이 담긴 그 작은 책갈피를 보면서 만듦새의 예술성이란 크기와 상관없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다. 아무튼 이 전시는 4월 12일까지 유어마인드 온라인과 오프라인 책방에서 열리니 궁금하신 분은 방문해보세요.²


2월에는 계획에도 없던 드라마 대본을 써보았다. 어느 날 넋 놓고 TV를 보고 있는데 화면 자막으로 드라마 극본 공모 소식이 지나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모집 공고를 자세히 찾아보니 대상 상금이 2천만 원이었다. 상금에 눈이 먼 게 사실이지만 이거야말로 지금까지 드라마와 함께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할 기회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단막극 시놉시스를 노트에 끼적이기 시작했다. 경험에서 나온 글이 아무래도 자신 있다 보니 배경은 또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에 대해서라면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에세이도 써봤으니 이제 극본만 남은 거다. 자, 그럼 어떻게 쓰는 거지? 학교에서 희곡 수업을 듣긴 했지만 생각나는 거라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같은 고대 아테네 어르신뿐이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드라마 대본 쓰는 법’을 넣어 보았다. 단막극은 보통 70분짜리고 A4지 1매가 2분 분량이니 70분은 A4지 35매 정도라고 누군가 친절하게 써 놓은 글을 보았다. 하루에 A4 두 장씩만 쓰면 20일이면 넉넉히 쓸 수 있겠단 계산이 나왔다. 마감은 3월 1일이었으니 잘만 하면 2월 한 달 동안 완성할 수 있었다. 암, 있고말고.


다이어리에 표시까지 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쓰던 극본을 2주 만에 멈추었다. 조금만 더 쓰면 분량을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분량과 별개로 이야기에 대한 신뢰가 점점 흐려졌다. 계속 써 나가려면 적어도 그 이야기가 나 스스로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힘을 전혀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스펙터클 판타지 어드벤처가 아니라면 누가 도서관 이야기를 좋아할까 싶었다. 도서관 지하 서고를 통해 과거로 타임슬립을 한다거나, 세상의 모든 지식에 통달한 사서가 알고 보니 외계인이었다거나 하는. 극단적인 예를 들긴 했지만 이것 말고도 드라마는 드라마여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 많은 사람이 시간을 쓰고 몸을 움직이며 하나의 작품을 위해 투신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그저 평범하고 밋밋하기만 한 이야기에 몰두했던 시간이 아깝긴 했지만 이것도 경험이라 여기고 가볍게 마음을 내려놓았다. 안녕. 쓰는 동안 뭐라도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대부분 대사로 이루어져서 혼자 쓰고 있어도 마치 대여섯 명의 친구들과 늘 수다 떠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드라마를 백 편쯤 더 본 뒤에 다시 도전해보자.


자신 없는 일에는 거절도 포기도 빠른 편인 내가 자신 없는데도 붙잡고 있는 글이 하나 있다. 시도하려다 좌절하고 또 하려다 좌절하기를 반복하다가,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다시 시도할 마음이 생겨서 더디지만 계속 이어보고 있다. 아마도 내 인생 통틀어 가장 어려운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데 애초에 쉬운 것만 하고 싶지 않아서 시작한 일이기도 하다.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하다가도 한두 줄 이어가다 보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가 다시 생긴다. 반드시 꼭 해내야 한다는 부담은 지지 않으려 하지만 반드시 해내고 싶은 도전 욕구도 있다.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지만 현생에서 느끼는 많은 고통 중에 그나마 나은 고통 아닌가 싶어서 아직 그만두지 않고 있다. 이것이 2021년 춘분까지의 내 삶이다.  

[그림] 지구의 공전에 따른 태양 황경과 24절기


춘분은 지구를 기준으로 태양의 위치가 적도와 일치하기 때문에 황경이 0°가 되는 순간이다. 하루에 1°씩 움직이다가 90°가 되는 하지, 180°가 되는 추분, 270°가 되는 동지를 지나 다시 0°가 되면 지구의 공전이 끝난다. 끝나기는 뭘 끝나. 다시 시작된다. 우주적으로 보면 찰나에 불과하지만 지구가 공전하는 일 년 동안 우리는 외부든 내부든 많은 변화를 겪고 지구와 함께 한 살씩 늙는다. 중학교 교과 과정에 다 나와 있는 건데도 이렇게 새삼스러울 수가 없다. 이번 연재가 아니었다면 이런 걸 다시 찾아보겠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았겠지. 과학 시간에 눈만 제대로 뜨고 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이제야 발견해 놓고 뒤늦게 유레카를 외치고 있지만, 이전에 놓쳐 버린 발견의 기쁨을 새삼스럽게 느끼며 남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 <끝>



1. 연합뉴스 2016.11.30.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8859520


2. 유어마인드 전시 <71개의 책갈피> 2020.3.12-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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