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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May 21. 2021

소만小滿

05.21.(양력), 태양 황경 60°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생장하는 절기로, 이때부터 여름 기분이 나기 시작한다. 소만 무렵에는 모내기 준비를 하는데 이른 모내기, 가을보리 먼저 베기, 여러 가지 밭작물 김매기가 줄을 잇는 매우 바쁜 농사철이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이번 5월은 내겐 너무 힘든 가정의 달이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주에 몹시 아팠다. 새벽에 갑자기 오한이 와서 자고 있던 박수영의 이불까지 뺏어 두 겹을 덮었다. 다음날에는 두통에 근육통에 구토와 설사까지, 아무래도 이 몸 안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게 확실해 보였다. 코로나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열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무실에는 당연히 가지 못했다. 아파서 못 가기는 처음이었다.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는데도 그 ‘가만히’가 너무 힘들었다. 졸지에 이런 상태가 되다니. 자기 몸 하나 가눌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능력이고 축복인지 깨달았다. 아파서 누워 있는 동안 노트북은 켜지도 않았고 책 한 줄 읽지 못했으며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도 모두 버렸다.


오한과 근육통은 약간의 흔적만 남기고 사라졌지만 두통과 설사는 제법 오래 갔다. 어버이날인 8일에는 점심은 친정에서, 저녁은 시가에서 보내기로 했는데 그 일정이 내 몸 상태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나 보다. 친정에 가기 전에 두 번, 친정집에서 두 번, 친정집에서 나온 뒤에 또 한 번. 화장실에 간 횟수다. 문제는 시가에 가는 일이었다. 두통이야 타이레놀과 정신력으로 어떻게 막아볼 수 있겠지만 거기서도 줄줄이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친정에서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게 약간의 효과가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멍을 때리고 있어야만 그나마 괜찮아지는 병을 앓고 나자 일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그 사이 몸은 조금씩 예전의 상태를 찾아갔지만 글은 내가 멈춘 곳에서 단 한 자도 늘어나지 않았다. 왜 당연한 소릴 하고 있지. 내가 멈추면 모든 게 멈춘다. 이 당연한 사실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처럼 아플 때다. 내 몸이 기계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고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도 않지만 아픈 순간만큼은 어딘가 고장 나거나 스위치가 꺼지면 작동이 멈추는 기계가 분명하다는 걸 실감한다. 풍파에 녹이 슬기도 하고 오래되면 용도를 변경하거나 폐기해야 하는. 그러니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는 건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었다.   


1. 멀쩡할 때 최대한 많이 쓸 것


생각보다 멀쩡한 날이 별로 없다. 온전한 몸과 정신 상태로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있는 것조차, 화장실까지 내 발로 걸어가 스스로 생리현상을 해결하는 것조차 힘에 겨운 상황은 언제라도 올 수 있다. 만약 지금 허리를 세우고 앉아 손가락을 움직여 가며 머릿속의 생각을 문장으로 내보낼 힘이 있다면 바로 써야 한다. 나중은 없다. 쓸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써야 한다. 물론 그렇게 해서 쏟아낸 게 다 글이 되는 건 아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덜어내려 해도 덜어낼 것이 있어야 덜어내든 말든 하지 않겠는가.   


2. 혼자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쓸 것


강제로 출근해야 하는 일도 아니고 쓰는 일정을 내가 정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약속에 열려 있는 편이다. 되도록 상대의 일정에 맞추고, 여럿이 모일 경우엔 가장 바쁜 사람의 일정에 맞춘다. 그렇게 모이는 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어서 일단 누군가 만나자고 하면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대체로 거절하지 않는다. 거절하지 않기 위해 혼자 있을 때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한다. 혼자서 조용히 쓰는 시간도 좋지만 누군가와 만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좋기 때문이다. 그 만남이 부담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진정으로 편안한 휴식이 될 수 있도록 하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래야 혼자서도 함께여도 즐거울 수 있다는 걸 점점 느끼고 있다.    


3. 사후 취소보단 산뜻한 거절


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일정이 겹쳐서이기도 하지만 단지 기분의 문제가 끼어들 때, 이 만남이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때, 왠지 소모감만 안겨줄 것 같을 때, 주로 합리적 판단보다는 주관적 느낌이나 기운을 따른다. 결국엔 내 몸이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럴 땐 초반에 거절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 서로에게 좋다. 어영부영 시간만 끌다 뒤늦게 취소하거나, 상황을 봐가며 답을 주겠다는 말로 상대를 기다리게 하는 게 내키지 않기도 하고, 어떤 것의 좋고 싫음이 대부분 초반에 결정나버려서 시간을 끌 이유가 없다. 지난 3년 동안의 독립출판 경험은 적어도 내게 이거 하나는 알려주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지.  


4. 이상 신호가 오면 모든 것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갈 것


가장 중요하다. 앞의 모든 것은 이 4번을 위해 존재한다. 멀쩡할 때, 혼자 있을 때, 싫은 것을 죄다 거절하면서 글을 쓰는 이유는 이것 하나다. 몸이든 마음이든 어딘가에 이상 신호가 왔을 때 훌훌 털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미련이 더 큰 병으로 남지 않도록. 하여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가정의 달이든 호국보훈의 달이든 달마다 가리지 않고 찾아오는 생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멀쩡한 날 찾기가 쉽지 않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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