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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선 Jul 08. 2021

소서小暑

07.07.(양력), 태양 황경 105°

‘작은 더위’라 불리는 절기이다. 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로 과일과 채소가 많이 나며, 밀과 보리도 이때부터 먹는다. 농사철 중에서는 대체로 한가한 편으로 밀가루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www.nfm.go.kr)


아침부터 맥도날드 맥모닝 해피밀 세트를 주문했다. 요 며칠 아침마다 배달 앱을 켜 놓고 주문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마지막 결제 단계에서 는 것으로 의 인내심높이 샀는데 오늘은 그냥 시켜버렸다. 시킬까 말까, 먹을까 말까, 할까 말까 사이의 아슬아슬한 지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공이 넘어가는 찰나는 어떻게 결정되는지 늘 궁금하다. 요즘은 그때가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결제 버튼 누를 때.


정오에 낮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오후 2시였다. 이러면 일찍 일어난 게 아무 소용없지 않은가. 한숨을 쉬다가 일단은 플랭크를 했다. 엎드린 자세로 어깨부터 발목까지 일직선이 되게 한 다음 버틸 만큼 버텨 보는, 단순하지만 독한 운동이다. 한 달째 매일 하고 있다. 매일 최소 1분 이상 버티는 게 목표다. 너무 짧은 시간이라는 걸 알지만 1분만 지나도 죽을 것 같다. 배 아래로 지옥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고 아무리 가정하려 해도 아, 됐어! 그건 상상일 뿐이잖아! 하면서 몸을 내려놓는다. 1분만 했는데도 요즘 같은 날씨엔 온몸의 땀구멍이 열린다. 사우나가 따로 없다.  


세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로봇 청소기를 돌렸다. 요즘 낮 시간 동안 유일하게 나와 대화하는 녀석이다. 작동시키면 저절로 움직이고 말도 하니 친구 같다. 달리 로봇인가. 청소가 본업인데 깔끔한 성격은 아닌 것 같지만 뒤뚱거리면서도 제법 열심히 일한다. 어이구, 착하다! 수고했어! 고마워!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알아듣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청소가 끝난 카펫 위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오늘이 ‘소서’라는 걸 아침에 눈을 뜨고야 알았다. 지금까지는 새로운 절기가 기 일주일 전부터 주제를 정하고 쓰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특별한 일이 없기도 했고, 다른 글을 쓰느라 시간을 따로 내기가 어렵기도 했다. 나와의 약속이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으니 이번에는 순수하게 오늘의 이야기를 담아보기로 한다. 아침부터 맥모닝 해피밀 세트를 주문하지 않았다면 평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 오늘을.


매일 똑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 그 가운데 매일 달라지는 게 있다면 쓰고 있는 글의 내용일 거다. 지난봄부터 쓰고 있는 글을 계속 이어서 쓰고 있다. 부지런히 써서 원고를 끝내 놔야 나머지 것들을 할 수 있다. 11월에 있을 북 페어에 참가 신청을 해 놓은 상태다. 참가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 되더라도 올해 안에는 만들 생각이다. 이왕이면 됐으면 좋겠다. 북 페어는 기한 안에 책을 만드는 동력이 되어주기도 하지만 다 만든 책을 알리기에도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 혼자 만드는 사람에겐 더욱.


얼마 전에 『능청맞고 본격적인』이란 책이 나왔다. 2019년에서 2020년에 출간한 독립출판물 중 103종을 아카이빙한 책으로 마포디자인출판지원센터(whatreallymatters)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PLATFORM P)가 공동으로 펴내고 유어마인드가 기획을, 하우위아 임소라 작가가 편집과 진행을, 남주현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임효진 작가가 사진 촬영을 맡았다.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인 크레딧을 보며 참 멋지다고 생각했다. 펴낸 곳이 공공기관이고 비매품인 걸 보면 지원을 받아 제작한 것 같은데 여럿이 함께 만드는 책일수록, 혹은 다른 무엇일수록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하겠단 생각을 했다. 그렇지 않고 그것 자체로 수익을 내서 인건비와 제작비를 충당해야 하는 구조라면 누구라도 함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잘 되면 서로 좋지만 난 왜 안 되는 쪽을 먼저 생각할까. 아무튼 책 만드는 일에 지원 많이, 아끼지 말고 팍팍 해줬으면 좋겠다. 청원을 넣어 볼까?


어느새 7월을 맞았지만 휴가 계획은 아직 없다. 보통은 이맘 때 어딘가 갈 곳을 정해 놓고, 차편과 숙소를 예약해두고 기다렸는데. 어차피 장마가 끝나고 나서야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그 전에 최대한 많이 써 놓는 일 말고 달리 뭘 할 수 있을까. 휴가를 가게 된다면 부산에 가고 싶다. 국제 갤러리에서 하고 있는 안규철 작가의 <사물의 다른 면> 전시도 보고 싶다. 최근에 박솔뫼 작가의 『미래 산책 연습』을 읽는 동안에도 부산에 가고 싶었다. 가면 꼭 먹고 싶은 것을 메모해두기도 했다. 오향장육이란 걸 아직 먹어본 적이 없는데 책에는 네 번인가 다섯 번이나 나온다. 작가가 정말 좋아하는 음식인 것 같다. 영도의 ‘이모 도나스’도 가봐야지.


비가 내리지 않는 어느 저녁 산책길에서 박수영과 이런 얘기를 했다. 매일이 똑같으니까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고.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만 보내는 느낌이라고. 그건 어쩌면 우리가 여행을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여행을 가면, 특히 해외로 멀리 가면 아무리 짧은 일정이더라도 아주 길게 살다 온 기분이 들었다. 하루와 하루 사이에 영원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은 두고두고 추억이 된다. 코로나 확진자가 다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이런 소리 할 시간에 어서 백신을 맞고 싶은데, 오늘도 잔여 백신 예약 알림이 바람에 스쳐 지나갔다. 장마가 그치면 부산에 가야겠다. 가서 바다라도 보고 와야지. <끝>  


해피밀 세트에 들어 있던 장난감. 공을 열면 가운을 입고 휴식 중인 또 다른 미니언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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