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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우경 Sep 07. 2023

버티는 일이 되어버린 교사, 공교육에 희망이 있을까?

나에게 가르치는 일은 가슴을 종종 뛰게 만드는 일이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함도 예쁘고 매해마다 반복하는 학교의 일상은 지루할 듯 하지만 사계절의 리듬을 타며 그 계절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들로 고유한 빛깔과 향기를 남긴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공부를 하게 해주는 것도 가르치는 일의 매력이다. 20대 초년의 교사일 적에는 오히려 덜 느꼈던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정신없이 흘러간 30대를 지나 40대가 되니 이런 마음이 더 크게 자리 잡는 듯하다.


작년에도 이런 마음이 강력하게 움트는 때였다. 사계절 중 봄의 기운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3월만 되면 더 강한 에너지에 휩싸인다. 새로운 아이들을 만나고 새로이 시작하는 한 해를 그려본다는 것은 교사에게 벅찬 일이다. 작년에는 그림책에 빠져있었던 때라 나는 2월부터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싶은 그림책을 모조리 구입하며 학급 운영에 박차를 가할 마음의 준비를 하였고, 3월이 되니 그림책에 나오는 깊은 속내를 가진 아이의 마음처럼 우리 반 아이들의 깊은 마음과 다양한 색깔을 인정해 주고 사랑해 주는 교실이 되기를 염원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염원과 섣부른 확신이 깨지기 시작한 건 3월 얼마 지나지 않은 학부모 상담주간 때이다. 학부모들과 상담을 진행하는데 불길한 예감이 관통해 왔다. "선생님, 우리 00 잘 지내나요? 근데, ㅁㅁ와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어서 가깝게 지내지 않게 해 주세요." 불안하게 만드는 멘트이다. 가깝게 지내지 않게 해 달라는 이유를 정리하자면 서로 이웃에 사는 집들인데 부모들끼리 사이가 안 좋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 집과 친한 여러 엄마들의 자녀들(여러 명)과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엄마의 아이(한 명)가 우리 반에 있다는 것이다. 교사의 불길한 예감은 거의 적중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여러 차례 그 엄마에게 나중에 있으리라 직감이 드는 그 일이 발생하지 않게 아이들끼리 잘 지낼 수 있게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을 여러 번 전했으나 결국 그 일은 발생하고 말았다. 그 사이가 안 좋은 두 집이 번갈아 가며 학교폭력을 걸어 대고 학교는 그들의 전쟁터가 되고 우리 반은 폐허가 되었다. 사랑이 있는 교실이 되기를 바랐던 나는 너무나 무능력하게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조차 할 수 없는 교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늘 그들이 살기 위해 교사를 희생양 삼듯, 그들은 교사의 탓을 하며 책임을 물었다. 동네 싸움을 학교에서 일으켜 교실의 교육활동 운영 전체를 훼손시켰음에도 말이다.


내 일에 대한 사랑, 가치를 한순간에 내려놓게 될 만큼 이 일은 꽤 절망적이었다. 교사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힘은 아이에 대한 사랑과 일에 대한 사명감인데 그 사랑과 열정을 내비쳤던 스스로를 너무나 한심하고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다. 사실 교사 일을 하는 마음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과 비슷하다. 교실에 20명이 넘는 수많은 아이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 한 명도 포기할 수 없다는 욕심과 과도한 열정으로 이 한 몸 다 바치는 무모함을 저지르게 되는 게 교사 일의 함정이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골고루 주기 위해서는 나를 n등분하고 쪼개야 한다. 혼자서 감당하기에는 분명히 너무 많고 버거운 일이다. 나는 매차시 수학 학습지를 따로 출력하여 주는데, 채점만 하더라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학원 같으면 채점 알바라도 있는데, 우리 반에서는 교사 혼자 채점하고 일일이 살피고 남겨서 공부를 시키는 것까지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그렇게 한다. 모든 교과를 그렇게 가르치는데 혼자서 분명 버거운 일이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한 명도 놓치지 않고 가르친다는 것은.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너무나 쉽게 내뱉는 그 슬로건 때문이 아니더라도(오히려 그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다.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일삼는지), 책임감과 사명감이 눈앞의 아이들을 보며 자동화되는 것은 피할 수가 없다. 노랑 버스를 타지 않는 게 불법이라는 걸 알면서도 1박 2일 수련 활동을 손꼽아 기다리며 기뻐하고 환호하는 아이들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는 게 싫어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먼 거리 가게 되면 사고의 위험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 책임을 총알받이 교사가 짊어지고 가는 불합리하고 비상식적인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도 차마 현장체험학습을 없애자라는 말을 하는 게 쉽지가 않다. 현장체험학습, 가정에서 많이 간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자주 못 가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어디를 가더라도 친구와 함께 가는 재미, 도시락 먹는 재미 이런 것들을 아이들은 너무나 좋아한다. 버스 타고 건강검진만 갔다 와도 아이들은 콧노래 부르며 너무 좋아한다. 코로나로 중단했던 것을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교사의 이런 마음은 현재로선 사실 꺾이고도 남을 상황이다. 나 또한 무한 낙하의 늪에 빠져 모든 게 가라앉았었다.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 관리자의 관료주의에 기인한 상명하달식 전달과 명령의 관례(예: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하지 않고 교사의 당연한 권리인 연가, 병가를 쓰면 징계하겠다는 명령), 현장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탁상 행정과 소통의 부재(예: 어린이 보호차량을 타지 않으면 도로교통법 위반이니 현장체험학습, 수학여행 모두 노란 버스를 이용하라는 어처구니없는 행정 처리). 교사를 전문가로 인식하지 않고 교육 소비재로 생각하는 학부모(너무나 많은 각종 사례들), 동네 싸움이든 뭐든 기분 나쁘면 학교에서 터뜨리면 되고 뒷감당 안 해도 된다는 학교만능주의 법, 생활 지도를 하면 고소당하게 만드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법, 노란 버스 안 타면 현장체험학습이든 건강검진이든 아무 데도 못 간다는 서러운 법 등, 뿐만 아니라 교사 혼자서 20명이 넘는 학생들에 대한 전 과목 수업(몇 개 전담 수업 빼고) 도달에 대한 책임제, 20명이 넘는 아이들과 학부모를 혼자서 책임지고 상대해야 하는 담임교사제, 가르치는 일과 관련이 있는 일인지도 모를 셀 수도 없이 많은 업무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시스템 등등 꺾이고도 남을 상황은 무한가지이다. 이 중 한 가지만 있어도 강력해서 꺾이고도 남는데 가짓수도 무한가지.


위의 것들이 확실하게 바뀌지 않는 한, 더 이상 사랑 가득한 온정과 기운만으로 버티기에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 비상식적인 것이 쌓일 때로 쌓여 임계치를 이미 넘어선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해왔던 데로 버티기에는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이다.


더 이상 교사가 다치도록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것이다. 진정 공교육을 생각하고 아이들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훌륭한 공교육 교사를 잃지 않으려면


#공교육 #교사 #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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