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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 Yoon Jun 08. 2023

불타는 금요일 밤(불금)

초여름 어느 금요일 저녁이었다. 친구 둘과 나는 뉴저지주에 있는 저지시티로 가기 위해 홀랜드 터널을 건너는 중이었다. 맨해튼과 뉴저지 사이에는 허드슨강이 흐른다. 우리가 사는 맨해튼에서 뉴저지로 가기 위해선 다리를 건너거나 배(페리)를 타거나, 아니면 터널을 건너야 했다.      


우리 셋 중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친구가 자신의 차를 가져왔다. 그녀의 연초록색 사브(Saab)는 매끈하고 날렵했다. 속도를 내는데 거침이 없었고 코너를 돌 때는 모두가 한쪽으로 쏠렸다.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녀의 운전 솜씨에 우리는 무섭다기보다는 우스운 생각이 들어 연신 히죽거렸다. 술을 마시기도 전에 금요일 밤이라는 사실 때문에 취한 탓일 수도 있었다. 무언가 즐거운 일이 벌어진다는 기대감만으로도 취할 수 있던 나이였다.

     

터널을 빠져나오는데 40분 이상이나 걸렸다. 도시의 외곽도로에서 속도를 내면서 자동차의 선루프를 열었다. 상쾌한 바람이 자동차 안으로 들어와 우리들의 머리카락을 흩트려 놓았고 무슨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소리를 질렀다. 해방이란 이런 것이었다. 산다는 것, 하고 싶지 않은 일, 계획 없는 미래, 가난, 그리고 세상의 기준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한 주를 보내면서 우리는 어떻게든 또 버텨냈다. 뒷자리에 앉은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Fuck that shit.”(될 대로 되라지.)


“What did you say?”(뭐라 한 거야?)     


운전하던 친구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물었다. 자동차의 속도와 바람과 도로에서 나는 소리가 한데 섞여 우리들의 대화는 잘 들리지 않았다. 내가 아까보다 목소리를 더 높였다.     


“I said, ‘Fuck all that shit!’”(‘될 대로 되란 말이지!’라고 했어.)


“Er, whatever it is, screw it!”(어,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내버려 둬!)


친구가 맞받아서 소리쳤다. 나는 품에 안고 있던 와인병을 높이 들어 흔들어 보였다. 조수석에 앉은 친구가 환호했다.

      



이층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주택가 도로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초대받은 집으로 들어갔다. 젊은 부부가 양팔을 벌리며 우리를 환영했다. 선물로 준비해 간 와인병을 남편에게 건네자 그가 활짝 웃으며 우리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거실을 거쳐 부엌과 연결된 야외 테라스로 나가자 고기 굽는 냄새가 기분 좋게 코를 자극했다.


남편은 자신을 ‘카를로스’라고 소개했다. 내 친구들은 구면이라 인사가 필요 없었고 나만 카를로스와 그의 부인(미안하지만, 이름을 잊어버렸다)과 악수를 했다. 카를로스 부부는 브라질에서 뉴욕으로 유학을 왔다. 카를로스는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고 싶어 했지만,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벌써 몇 달째 친구가 운영하는 어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사브를 모는 친구는 작은 어학원의 원장이자 카를로스의 영어 선생이기도 했다. 하루는 수업 시간에 브라질 고기에 관한 내용이 나왔는데, 카를로스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정정했다.

     

“브라질 고기가 특별히 맛있다고 하는 건 소들에게 주는 물이나 먹이, 혹은 뭐 토양이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무엇 때문에 유명한 거지?”     


친구가 묻자 카를로스는 ‘브라질인들만의 고기를 자르는 법’이라고 했다. 그는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며 즉석에서 친구를 자기 집 바비큐 파티에 초대했다.      


카를로스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월마트에서 샀다는 평범한 미국 소고기는 블랙앵거스 못지않은 풍미를 풍겼다. 소금과 후추만 뿌렸을 뿐인데 고기는 잡냄새 하나 없이 부드럽고 맛있었다. 우리는 고기를 미친 듯이 흡입했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는 그때처럼 소고기 스테이크를 맛있게 먹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맛있다며 극찬을 하자 카를로스가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It’s all about how to cut meat against its grain.”(모든 건 고기를 결 반대로 썰어야 한다는 거에요.)    


고기를 결 반대로 자르면 고기의 근섬유와 결합조직을 적절히 끊어서 식감이 부드럽고 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 반대로 썬다고 해서 누구나 이처럼 고급스러운 고기 맛을 낼 수는 없다고 했다. 카를로스는 브라질인들만이 그 경지를 본능적으로 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날 고기에 대한 강의(?)를 들었어도, 훗날 나는 최상급의 한우를 가지고도 그가 냈던 그 맛을 구현하지 못했다.     


배가 부르자 카를로스 부부와 그의 친구들, 그리고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술을 마셨다. 나는 코로나 맥주를 마셨고, 운전한 친구는 콜라를, 그리고 다른 한 친구는 테킬라를 마셨다. 맥주를 마시던 카를로스는 흥이 났는지 친구와 함께 테킬라 샷을 서너 잔 주고받더니 우리 모두를 자신의 공부방으로 데려갔다.

      

데스크톱 컴퓨터가 놓인 책상 옆에 검은색 가라오케 기계가 있었다. 카를로스는 아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서 브라질에서부터 가져온 것이라며, 일본 제품이 최고라고 했다. 그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나랑 같이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사브를 몰고 온 친구가 그에게 한국인인 내가 왜 일본을 함께 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내가 일본인이 아니었냐고 되물었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      


사실 카를로스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내게 일본인이냐고 물었고 나는 한국인이라고 대답했다. 이 질문과 대답을 여러 번 하는 걸로 봐서 그는 취했음이 분명했다. 나 역시 짜증 내지 않고 같은 질문에 같은 대답을 성의있게 하는 것으로 봐서는 취했다고 볼 수 있었다.     


가라오케 기계에 불이 들어오고 화면이 켜지자 카를로스의 아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내내 조용히 있던 그녀가 기계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스웨덴 그룹 아바(Abba)의 노래였다. 나는 아바가 그렇게 많은 노래를 부른 줄 몰랐다. 한 곡이 끝나면 다음 곡을, 또 그다음 곡을, 그녀는 끝없이 아바의 노래를 불렀다.      


어쩌면 카를로스의 아내는 뮤지컬 ‘맘마미아’의 탄생을 예상했는지도 모른다. 아바의 노래로만 구성된 뮤지컬 맘마미아가 1999년 런던에서 처음 공연되었는데, 내가 그녀의 노래를 들었던 건 그보다 2년 전인 1997년 여름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그날 스무 곡 이상의 아바 노래를 들었다. ‘댄싱 퀸’을 부를 때는 모두 떼창을 했다. 역시 ‘댄싱 퀸’은 구성원들의 결속을 부르는 노래방 탑 순위에 드는 노래다운 위엄을 보였다.     


우리는 카를로스 부부의 집에서 새벽까지 놀다가 맨해튼으로 돌아왔다. 노래를 부르느라 목이 쉬었고 숙취로 머리가 어질어질했지만, 이제 곧 서른이 될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던 우리 세 명에겐 피곤했지만 필요했던 ‘불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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