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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ris Sep 19. 2023

천연이라는 착각, 인공이라는 편견

    거두절미하고 말하겠다. 우린 매일마다 극도로 위험한 물질을 먹고 있다. 이 물질은 복어, 독사 같은 맹독을 보유한 동물들에게서 흔히 검출되며, 공업용으로도 자주 쓰이기도 하는 물질이 우리 입에 매일 들어가고 있다. 법의 허점을 이용해 각종 식품에 이 물질을 첨가하고 있으며, 암, 당뇨 같은 난치병이나 불치병 환자들의 소변에서도 많이 검출되는 물질이 말이다. 심지어 법의 허점을 파고들어 제품에 이 물질을 얼마나 첨가했는지에 대한 사실 표기를 의무화하거나 권고하는 법률조차 없으며, 단순히 편하다는 이유로 너무나도 싼 가격에 여기저기서 팔리고 있다. 이런 행패를 우리는 보고만 있어야만 할까? 다른 집에선 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우리 집 식탁에선 저것을 치워야 하지 않을까? 아쉽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말한 저 물질의 정체는 일산화이수소(H2O), 다른 말로 물이기 때문이다. 뭔가 속은 기분이 든다면, 위 글에서 '물질'을 '물'로 바꿔 다시 읽어보자. 복어나 독사도 결국엔 생명체이기에 물이 필요하다. 불치병에 걸린 환자들도 소변에 물의 비율이 건강한 사람에 비해 적거나 많을 순 있어도 안 나오진 않을 것이다. 또한 무언가를 녹이는데 탁월한 성능을 가진 물은 공업에서 안 쓸 수 없는 필수적인 자재이다. 하다못해 시멘트 반죽을 만드는데도 물이 필요하다. 또한 각종 제품에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갔는지 의무화하는 법률 또한 없다.

    위 문단에서 볼 수 있듯, 약간의 말장난만 있으면 물 같은 생존에 필수적인 물질도 극악한 독극물처럼 들리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른 물질들은 어떨까? 믹스커피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카제인나트륨이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주로 유해물질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오곤 하던 이 물질은 사실 우유 단백질에 있는 하나의 성분일 뿐이다. 당장 이름의 '카제인'(Casein)부터 라틴어로 치즈를 뜻하는 caseus에서 따온 단어이다. 나트륨이 붙은 이유는 우유에서 이 카제인을 추출한 뒤, 물에 잘 녹을 수 있도록 나트륨과 합쳤기 때문이다. 이런 카제인나트륨이 '유단백추출물'같은 그나마 익숙한 이름으로 불렀으면 이 물질을 피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우유 단백질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크게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약간의 말장난으로 카제인나트륨은 합성 물질, 천연 물질이 아닌 무언가라는 오명이 씌워졌었고, 나중에 카제인나트륨이 무해 판정을 받은 지금도 아직도 이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MSG 또한 마찬가지이다. 화학조미료라는 이름 아래 MSG는 피해야 할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실력 없는 식당들이 싸구려 재료 맛을 숨기려고 MSG를 과도하게 넣는 2차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MSG를 사용하는 행위 자체가 비난받아서는 안된다. MSG는 죄가 없다. 그것을 남용하는 자들에게 죄가 있을 뿐. 오히려 각종 재료들을 오랜 시간 동안 끓여서 감칠맛을 내야 할 수고를 덜 여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어야 했을 물질을 왜 우리는 비난하고 있는가? 오히려 MSG를 피한다고 해서 다른 검증되지 않은 조미료를 넣는 주객전도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러한 기피 현상은 자연 그대로의 것만이 이롭다는 천연주의와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천연주의가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은 아니다. 특히나 가격 절감이라는 이유로 품질이 좋지 않은 저질 제품을 씀으로 인해서 저질 재료를 쓴다는 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점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어느 정도 품질이 보장되는 선에선 화학 제품들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천연이라 해서 항상 좋은 것이 아니며, 화학이라고 해서 항상 나쁜 것이 아니다. 정의상으로만 보면 수은, 납 같은 중금속이나 독버섯 같은 유독성 물질 또한 100% 천연 물질이다. 국의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타는 것 또한 물이라는 용매에 소금이라는 용질을 넣어 용액을 만드는 엄연한 화학반응이며, 그로 인해 나온 결과물인 국 또한 인공 화학물질이다. 중요한 것은 화학이라고 무조건 경계하고 천연이라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감칠맛이라는 목적을 위해 자연에서 감칠맛을 내는 재료들을 가져와 물에 우리는 것도 정답이며, 그 재료들이 가지고 있는 주 성분을 탐구해서 뽑아낸 합성 조미료를 물에 녹이는 것 또한 정답이다. 맹목적인 천연 우월을 주장하는 것은 미원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이름 모를 독버섯으로 국물을 우리는 것과도 같다.

    이와 같은 주장을 하면 '그래도 화학물질이 위험한 것은 사실이니,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지 않은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질문이다. 물론 우리 생활 속에서 쓰는 물질들은 우리의 건강, 더 나아가서는 생명에 직결된 것들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화학 물질만 조심해야 하는가? 천연 물질들 또한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남이 틀렸다고 해서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설령 한쪽이 맞고 한쪽이 틀린 것으로 결과가 났다 해도, 그로 인해서 양쪽의 모두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지, 그저 내가 이겼다고 하는 사실만으로 우월감을 느끼고 싶으면 그것은 너무나도 유치하고 일차원적인 생각이다. 그렇게 해서는 우리의 삶이 쾌적해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순발적인 감정에만 의존하는 반지성주의라는 굴레가 씌워지는 지름길이다. 그러니 답변하자면 조심해서 나쁠 일은 없다는 말은 사실이나, 양쪽 모두 조심해야 나쁠 일이 없는 것이지, 한쪽만 조심해야 한다면 나쁠 일이 너무나도 많게 된다. 어떤 건 항상 좋고 어떤 건 항상 나쁘다는 색안경을 벗고 그것을 분석하고 탐구하는 행위가 가장 적절하지만, 그러기 어려울 경우 그것을 분석하고 탐구한 사람들의 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이해해야 한다는 말은 '누가 이게 좋다더라!' 혹은 '누가 이게 나쁘다더라!' 하는 말에 그것은 좋구나/나쁘구나 하고 결정 내는 것이 아니다. 그 주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분석하며, 의문 가는 점을 탐구하여 나오는 새로운 사실들을 긍정적인 관점들과 부정적인 여러 관점들로 보면서 공통되는 것을 사실로 인정하며, 동시에 나중에 이 사실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한다. 통찰력은 많이 아는데서가 아니라 지금까지 아는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사실로 다시 채울 용기가 있는데서 샘솟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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