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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laris Nov 29. 2023

자유보다 더 좋은 것은 자율적인 자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직업, 현 상황 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해서 선택한 다른 곳에서는 어떤 만족감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가 담긴 문구이다. 결론적으로만 보면 소설에 처한 동물들의 상황이 이와 정확히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메이저 영감의 연설에 인상을 받은 동물들이 봉기하여 세상을 바꿨지만 결국엔 존스가 운영하던 농장과 별 다를 것도 없는, 심지어는 더 나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낼 뿐이었다. 그렇지만 동물들은 존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봉기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작중에서 나폴레옹이 불만의 씨앗이 동물들에게서 나올 때마다 ‘존스가 다시 오길 원합니까?’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불만이 일축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독재와 다름없는 행패가 정당화되는 유일한 이유가 바로 인간 존스였다. 행적이 어찌 되었던 존스는 인간이고, 돼지들은 동물이다. 이 간단한 사실 하나만으로 돼지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릴 명분을 가지게 된다. 존스를 몰아내는데 참여했던 동물들은 이에 대한 반감을 가지지 않는다. 존스 밑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그 당시 동물들이 세상을 떠나고 그때의 이야기만 알고 있는 동물들이 많아질수록 이들의 수긍 과정은 ‘존스 때보다는 나은걸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으니 참아야겠다’에서 ‘나는 모르지만, 존스 때보다는 낫다니까 참아야겠다’로 바뀐다. 이 두 기전의 결론은 같지만 정반대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직접 겪었기 때문에 수긍하는 측은 주장하는 측과 수긍하는 측이 생각하는 이유가 거의 동일한 선상에 놓여 있다. 그러나 후자의 경우에는 수긍의 근거가 주장하는 측에게 종속되어 있다. 이렇게 된다면 인내를 주장하는 측에서 무슨 말을 해도 대중들은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게 된다. 이 순간부터는 동물들이 스노볼을 어떻게 생각하던, 나폴레옹에 대한 호불호 여부와 상관없이 돼지들에게 권력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동물들은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그 자유라는 것은 전부 허락되고 교묘하게 제한되고 있는 방향으로 유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단순히 자유를 당연하게 여기고 그 안에서 만족하다가는 우리는 스스로의 자율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즉, 자유를 대하는 올바른 태도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확실한 인지와 그 방향을 누구에게도 부당하게 억압받지 않을 수 있을 자율성이 갖춰진 태도여야 한다. 즉, 우리는 자유보다 더 좋은 자율적인 자유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자기 삶의 모든 것을 새로 만들어내는 노력까지는 현실적으로 힘들지언정, 적어도 어떤 일을 하거나 하지 않는 데에는 자신만의 기준과 신념을 근거로 해야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은 같더라도, 그 과정은 나만의 개별성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며, 나와 맞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반감을 건전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우리는 더 좋은 자유를 누린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작중에서도 이러한 사실이 보이는 인물들이 둘 존재하는데, 바로 메이저 영감과 당나귀 벤자민이다. 메이저는 지금 상황의 부조리함을 알았고 그것을 고치자고 동물들을 움직이게 했고, 벤자민은 메이저처럼 현실의 부조리함을 알았지만 그것을 바꾸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둘 중 누구의 태도가 더 옳은지에 대해 잘잘못을 가릴 수는 있겠지만 그전에 우리는 이 두 인물에게서 공통된 미덕을 하나 찾아야 한다. 바로 현재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통찰력이다. 단순한 짜증, 분노 등의 감정이 아니라 방향성을 가진 감정을 이끌어냈다는 점을 이 둘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 단순한 감정 표출은 일회성이 짙은 단발성이 크지만, 그 감정이 이유와 목적을 가지게 되면 하나의 주장이 된다. 즉, 메이저와 벤자민은 이 소설 속에서 자율적인 자유를 이뤄낸 두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나'와 '우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스스로의 길을 지켜낸 사람들을 우리는 칭찬하고 이상적인 인물상으로 여긴다. 완전한 자유는 단순히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며,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방향이다. 즉 우리는 막연한 자유보다 더 좋은 것은 자율적인 자유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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