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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포포 Oct 24. 2021

여자는 태어나지 않고 만들어진다

계약결혼을 유지했던 시몬 드 보부아르의 명제는 지금껏 유효하다

정체성이란 본래 자의적이다. 애초에 우리는 남자로, 엄마로, 아들로, 한국인으로, 장애인으로, 성소수자로, 지구인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렇게 길러질 뿐이다. 아주 운이 좋다면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정체성을 선택할 수도 있다. 자꾸만 너와 눈이 마주치는게 신기하면서도 그저 좋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나처럼. 이전까진 나와 생물학적 성이 같은 사람을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너를 사랑하는 내가 가장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그 충만함은 나라는 존재를 채워주는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아무런 설명이 필요없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p106, 「단어가 내려온다」, 오정연, 허블 2021




결혼은 보통사람을 실존주의자, 혹은 투쟁가로 바꿔놓는다. 그만큼 모순투성이이며, 불완전한 사회제도이다. 그걸 모르고 결혼이라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여기에 모든 의문을 던질수밖에 없다. 왜 이따위지? 신실한 공산주의자가 아나키스트(무정부주의자)가 되는 것과 같다.


언젠가 쌍둥이 언니에게 우리가 어렸을 때 육체에 관해 배운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언니는 한 단어로 대답했다. “은밀성.”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우리 집에서는 몸에 관한 말을 거의 주고받지 않았고, 신체의 기능이나 충동이나 필요에 관해 대수롭지 않거나 가볍게 말하는 일이 없었으며, 육체를 자랑스러워하는 의식도 단연코 없었다. 우리 중 누구도 부모님의 벗은 몸을 본 적이 없고, 거의 벗은 모습조차도 본 적이 없다. 섹스에 관련된 단어나 섹스 소리도 들은 적이 없다. 


p202, 「욕구들」, 캐럴라인 냅, 북하우스 2021


사회적으로 여성의 성욕은 말해지기를 거부한다. 수동적이며, 대상이 되기를 바란다. 주체가 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저 예쁘게 꾸미고 다듬고 가꿔서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라는 메세지는 도처에 너무도 많다. 지하철을 환승할때마다 마주하게되는 안면윤곽성형, 다리교정, 치아교정, 안티 링클, 여성성의 극대화를 위한 모든 시술들에 넌더리가 날 지경이다.


프랑스와 같은 서구의 동거나 사실혼 등이 일체 인정되지 않는 이 사회에서는 이성 간의 생활동반자를 가져보기가 어렵다. 나 역시 결혼 전 그러한 경험을 가져본 적이 없고(그전까지는 혈육과 살아왔다. 가족. 형제), 정말 취향을 점점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바로 결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개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포인트에서 행복감이 최대치가 되는지, 혹은 좌절감을 느끼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 그것이다. 첫 경험을 떠올려본다면 그를 거절하면 우리 관계가 깨어질까봐 거절하지 못하는 여성들이 존재하고. 우리가 불편하고 아프다고 기억하는 그 경험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그랬다. 대개 유쾌하지도 좋지도, 롤러코스터 같은 짜릿함도 없다. 그와 함께 잠으로써 그와의 긴밀한 관계를 이루었다는 사소한 만족감으로 자기 위안 삼을 뿐이다.


결혼이라는 안전망 안에서 안전하게 표출되기를 바라는 여성의 성욕은, 이성애와의 불합. 또는 유일한 성적대상인 남편과의 부조화에서 좌절된다.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과, 상대방 남성이 도달하고자 하는 지점이 다를 때 그때 삶의 의지 한 켠은 꺾여 나가는 듯하다. 무의미하고 권태로운,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성관계.


우리는 우리의 성욕이 어떤 지점에 어떤 형태로 놓여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지점은 '결혼'이라는 사회법적제도 안에서 유일하고 안전하게 작동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에 대한 탐구는 결혼과 함께 시작된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또렷이 바라보게 되고, 동반자와 충돌하는 지점에서 나의 취향은 더욱 확고하게 정의된다.


결혼하고 결혼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결혼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동시에 결혼 속에 있는 나에 대해서도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왜 내 선택으로 내 삶을 불행 속에 놓게 되었을까? 모든 결혼은 그러한가? 결혼에서는 모두가 희생자일 수 밖에 없는가? 나는 이만큼 절망적인 결론 앞에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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