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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중 Feb 17. 2021

떨어져 있다는 것이 두려운 이들을 위한 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시 한 모금

의자



헝겊 인형을 주워왔다

의자에 앉힌다

나는 1인분의 식사를 준비한다

인형이 사라지면, 사라지면


사라진다는 것은 그다지 멀리 가는 게 아니다


인형이 의자에서 떨어져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건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절벽을 경험하겠지


나는 꽃병에 꽂을 부추꽃과 코스모스를 꺾으러 나간다

인형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사라진 것이다

인형은 이별의 절벽을 경험하겠지


사라진다는 것은 문을 열고 나가

문 뒤에 영원히 기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들의 차가워진 심장


내가 꽃을 들고 올 때까지 인형은 의자에 앉아 있다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적이 있다는 것을

그 바로 옆이 꽃밭이었다는 것을 기억하는 헝겊 인형이

의자에 앉아 마소를 짓고 있다


- 박서영, 「의자」, 『연인들은 부지런히 서로를 잊으리라』, 문학동네, 2019




  이 시의 화자는 “떨어지다”의 두 가지 의미에 관해 말하고 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과 두 사람이 떨어지게 되는 것은 사실 같은 의미다.


  우연히 발견한 헝겊인형을 주워온 화자는 인형을 의자에 앉히고, 자신이 먹을 식사를 준비한다. 화자는 온전히 자신의 식사만 준비하고 있다. 시의 화자는 인형과 자신의 시선을 나눈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화자는 인형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하고 사라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떨어진다는 것, 이별이란 항상 두 사람의 경험이 남몰래 만나고 있는 것이다. 의자에서 떨어진 인형은 절벽을 경험하겠지만, 실은 절벽에서 떨어진 것은 화자 자신이기도 하다.


  밥을 짓고, 꽃을 꺾는 일상 속에서 멀어지고 떨어지는 것 또한 일상이 된다. 문을 열고 나가, 서로가 서로에게 사라진 상황에서 인형은 의자에 혼자 앉아있겠지만 ‘나’도 문 뒤에서 기대고 서있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가슴에서 멀어지고 떨어지는 것은 “그다지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항상 모든 만남이 같은 결론으로 이를까 자신이 버려진 곳 옆의 꽃과 누군가 자신을 위해 꺾어온 꽃이 같을 수는 없다. 떨어지는 것과 떨어지는 것 사이에서 꽃과 꽃은 다른 걸 말하고 있다. 문 뒤에 서있다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일로 충분하다, 당신이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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