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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중 Aug 28. 2021

비둘기와 너는 모두 도시에서 살고 도시에서 죽는다

너는 비 오는 날 살이 꺾인 우산을 빌려주었어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같이

꺾은 채로     


우산뿐만이 아니야 찻잔의 손잡이도 같이 끊기며

차가 아니라

검은빛이 쏟아졌으니

다리 밑은 둥지가 되겠지     


너는 비둘기가 절벽에 둥지를 틀기 때문에 도시는 인간의 절벽이라고 했지

지나는 차의 소음이 빗소리 같다고도      


비둘기는 사람의 미래야

다들 아침이면 ‘나는’으로

시작하는 말을 끝맺지 못해

빛을 쪼며      


항상 비가 내리는 곳에 살고 있어 

라는 문장을 잘라 홀로 삼키고

살이 꺾인 모습을 상상하지


둥지에서 홀로 죽은 새처럼     


떨리고     


깃털이 축축해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 안에서

결국 눈을 닫았어 

다시 


남몰래 번식하는 어스름은

미래를 자르며 다가오고      


자정이 지나면 나에게는 매일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지만     

받지 않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붙잡고

절벽에 매달리듯     


물 안에 잠긴 녹슨 기둥이 

은밀하게

가장 위에서부터 무너지듯     


내 밑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고

너는 되레 물었지

무엇을 지탱하고 있어?

(사람의 피부 혹은 곧 깨질 것 같은 컵 받침)     


살이 꺾이며 줄어드는 우산 밑에서

내가 받지 않은 통화내용을 상상해     


낯선 사람을 좋아할 수는 있어도

싫어할 수는 없어서

당신을 알고 싶어요     


여름의 웅덩이를 

실수인 것처럼 밟듯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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