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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필수 Jul 24. 2021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안다.




작년 12월, 어머니께서 몸을 버리셨다. 급히 병원에 도착했을 때, 시신에는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어머니의 얼굴은 그동안의 힘겨움을 다 쏟아 내신 것 같은 표정이었다. 지난 6개월간 병원에서 겪으신 고통을 생각하면, 돌아가신 게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몸은 어머니가 아니다.’라고 아는 것이 감사했다. 내가 진리공부를 통해 인간이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그렇지 않았더라면 지금 이 상황이 얼마나 슬프고 괴로웠을까? 더이상 얼굴을 대면할 수 없는 것이 아쉽기는 해도, 어머니의 영혼이 더 편안해지신 것이 기뻤다.



현상적인 인간의 삶은 인연에 따라 만나고 헤어진다.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벌어지지 않을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생각에 매여 괴로워하거나, 영적 진리를 알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거나 할 뿐이다.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어머니는 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에게 사랑을 베푸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짧게 지나가는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인가를 철저히 다시 생각하게 해 주셨으니 말이다. 어머니 덕분에 ‘진짜 나는 누구인가?’를 깨닫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표라는 것을 새삼 깨우치게 된 것이 정말 감사했다.







작년까지 어느 대기업의 CEO로 계시다가 은퇴하신 선배님이 SNS에 최근 자신의 심정을 절절하게 적어 올리셨다.



‘참으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습니다. 세상이 뒤집어지는 코로나로 끝 모를 침잠(沈潛) 속에 웅크리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38년 조직생활의 마감! 그보다도 더 철없이(?) 살아온 지난 날들에 대한 후회(後悔)와 반성(反省), 성찰(省察)! 자신(自身)에 대한 처절히 목놓은 울부짖음!!! 자신에 대한 연민(憐憫)과 안타까움... 턱없는 허영(虛榮)과 자만(自滿)의 종말(終末)의 자화상(自畵像)...!!!   (중략) 

밤마다 악몽(惡夢)을 꿉니다. 눈 뜨면 사라지고 없는 그 허망(虛妄)한 격랑(激浪)... 무의식(無意識) 속에 어찌 그런 풍부한 상상력(想像力)이 있었던지... 말도 안되는 부대낌과 엮임이 밤마다 난무(亂舞)합니다. 눈뜨면 다 사라지고 허망(虛妄)한 잔상(殘像)들만...!’



아무리 은퇴를 한 뒤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괴로운 심정이실 줄은 몰랐다. 이 선배는 큰 회사의 CEO를 맡아 사상 최고의 실적을 낸 분이다. 그리고 경영인으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아 CEO를 6년 연임하셨다. 뿐만 아니라 하루 5시간 강의를 연속으로 할 만큼 유창한 언변에, 시조, 작사, 작곡, 성악 등 예술분야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는 분이다.



그런 분이 밤마다 악몽을 꾼다니…. 겉으로 비춰지는 모습과 내면의 정서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들, 업무를 위해 활용하던 자료와 도구들을 ‘내 생애(生涯)의 허망(虛妄)한 장식품들이었지요.’라고 쓴 대목에서 이 선배님이 느끼는 허무함의 정도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 하나가 채워지면 그 만큼 부족한 무엇인가가 늘 나타난다. 지능이 뛰어나면 몸이 아프고, 신체가 건강하면 경제적으로 어렵고, 경제력이 있으면 인간관계가 불편한 식이다. 좋고 나쁜 것이 상대적으로 교차하는 현상세계에서는 ‘부족함’이 늘 따라다닌다.



이렇게 부족함을 느끼는 것은 일반인만이 아니다.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정신적인 리더, 종교지도자도 마찬가지다. 2009년 어느 신문기사에 따르면, 죽음을 앞둔 김수환 추기경이 자신을 간병하는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요즘 정말 힘든 고독을 느끼고 있네.
86년 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그런 ‘절대고독’이라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주는데도
모두가 다 떨어져 나가는 듯하고,
하느님마저 의심되는 고독말일세

모든 것이 끊어져 나가고
나는 아주 깜깜한 우주 공간에
떠다니는 느낌일세."

                                                   - 2009년 02월 26일 문화일보






처음에 나는 너무 의아해서 ‘기사를 잘못 봤나?’ 하고 내용을 다시 읽어보았다. 86년간 가톨릭 신자와 사제로 살면서, 평생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살아온 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신에게서조차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고독’을 느끼다니! 그러면 저분보다 성경도 안 보고, 기도도 안 하고, 경건하게 생활하지도 않는, 우리 같은 일반인은 어떻게 될까?



군부독재시절 온국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었던 분이기에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자녀다.’라는 것은 모든 기독교에서 가장 기초적인 신앙의 내용이다. 그래서 평생 성직에 헌신한 분이라면 연륜이 더해 갈수록 ‘하느님의 사랑’을 깊게 느끼며 평안하실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추기경이 주변의 간병인들에게 미안해하면, 간병을 하는 신부가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그러면 김 추기경은 “아니야. 겉으로 보기에만 그랬어. 많이 부족했어.”라고 겸손하게 답했다고 한다. 인격적으로는 누구보다 숭고한 수준에 이른 분이었지만, 영적인 깊이는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공자는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진리[道]를 듣고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라고 했다. 말년이 되어도 자신의 이상정치를 펼칠 기회를 얻지 못한 공자는 절망적인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진리를 간절히 깨닫고 싶었다. 공자조차도 아직 완성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지만, 그는 끝까지 진리를 추구하는 자세를 잃지 않았다.





늘 ‘부족함’을 느끼는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이처럼 진리를 갈구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에서 확인한 것처럼 인간적인 부족함은 인간적인 수준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 아무리 고매한 인격을 갖추었다고 해도 ‘밝음과 어두움’, ‘고요함과 시끄러움’, ‘따뜻함과 차가움’처럼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 상대적인 감각에 의존해서는 ‘행복과 불행’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불완전성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의 ‘오감(五感)’으로 파악되는 현상은 가짜이며, 진짜 자기는 신성(神性), 혹은 불성(佛性)으로서 완전한 존재임을 알아야 비로소 모든 부족함이 사라진다. 밖으로는 약하고 부족해 보여도 안에 있는 완전성을 느끼기 때문에 고독이나 절망, 허무함이나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성자(聖子)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공(空)한 것으로 실재하지 않는다.”고 하고, 또 다른 성자는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성자는 감각적인 세계에 대해 일어나는 생각과 판단을 포기하고 영성(靈性)에만 집중하여 영적인 세계에 살게 된 존재다. 그러므로 그는 현상적인 세계에서 벌어지는 어떤 일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늘 마음이 평화롭다.



그러나 영적인 세계를 모르고 물질에만 집착해서는 진리의 가르침을 한 글자도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을 포함한 인간을 육체로 보아서는 물질적 환경의 영향을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영적 세계를 터득한 성자는,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물질적인 부(富)를 축적하려고 애쓰지 말고 “재물을 (영적인 세계인) ‘하늘나라’에 쌓아 두라.”고 한다. 감각세계에 대한 관심을 버리고 영적인 진리공부에 매진하라는 말이다.






나의 부족함은 진짜 내가 누군가를 모르는 것에서 비롯된다. 나는 일정기간 활동하다가 기능이 멈추는 이 몸이 아니다. ‘진짜 나’는 영원한 영적 존재다. ‘참나’는 한없는 사랑이고 쌩쌩한 생명이다. ‘참나’는 불행을 모르는 행복 자체다. 이러한 진리를 깨친 성자들은 몸을 버리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오히려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들은 “다 이루었다!” “아, 기쁘다!”라고 말한다.



인생은 짧고 진리는 영원하다. 그러나 그 짧은 인생동안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그 인생이 아주 긴 고통으로 느껴질 수 있다. 단잠을 자는 이에게는 밤이 없지만, 잠을 못 이루는 이에게는 밤이 몹시 길기 때문이다. 남송(南宋)의 유학자 주희(朱熹)는 ‘권학문(勸學文: 학문을 권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소년이로학난성(少年易老學難成)
나이를 먹기는 쉬우나 학문을 이루기는 어렵다.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
한 순간의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라.



어리석은 자는 인생이 길다고 생각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안다. 짧은 시간도 가볍게 여기지 말고 부지런히 진리를 공부하여 ‘참나’의 행복을 누리자. 본래 내 안에 있는 완전한 행복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자. 느닷없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 오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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