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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영 May 10. 2021

아직도 방황 중이야

아직도 '방황 중' 입니다만

 “엄마, 선생님이 이거 꼭 부모님이 읽어봐야 한대.”

 “이게 뭔데?”

 지훈(가명)이는 집에 오자마자 손에 들고 있던 큼직한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여러 색깔이 프린트 된 얇은 종이, 그건 ‘진로적성종합검사 결과지’였다. 6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단체로 검사한다더니, 드디어 결과가 나왔나보다.

 결과지를 펼쳐놓고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검사라는 게 참고만 하자 싶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네 장짜리 결과지에 있는 글자를 놓칠세라 한 자, 한 자 꼼꼼히 읽어보았다. 

 다른 건 평범한 이야기였는데, ‘진로발달검사’ 결과가 내 흥미를 끌었다. 그 결과지에는 아이 성향에 따라 어울리는 직업 그리고 대학 전공이 기재되어 있었다. 지훈이는 98% 압도적인 수치로 ‘현실형’이라는 성향이었다. 그 아래에 어울리는 직업으로 엔지니어, 건축기사, 운동선수가 적혀있고, 대학 전공으로는 기계과, 농축수산과, 체육과 등이 적혀있었다. 결과지만 보면 지훈이 진로는 벌써 결정 난 것처럼 보였다.


 플라시보 효과라고 있지 않나. 크면서 성향이 바뀔 수도 있는데 지금 이렇게 참고자료랍시고 전공과 직업을 제시해주면,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 자료를 따라가지 않을까? 나도 예전에 이런 검사결과를 받은 기억이 났다. 나는 직업이 한쪽으로 몰리지 않고 예술가와 엔지니어, 금융가 등이 중간 수치로 고루 나왔었다. 그래서 내가 진로를 결정할 때 그 검사는 별로 도움이 안됐다.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매년 학교에서 종이에 장래희망을 적으라고 했던 것 같다. 왜 다들 나에게 일찍 진로를 결정하라 하는 건지. 그 당시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중학생이던 나는 꿈이 다양했다. 산업디자이너, 번역가, 천체물리학자, 영화평론가, 검사 등 꿈에 통일성도 없었다. 그런데 나보고 한 분야를 고르라고 하니 난감했다. 고등학교를 갈 때도, 이과와 문과 중 하나를 선택할 때도, 대학 전공을 고를 때도 내가 꿈을 정해야지 어떤 것이든 선택할 수 있었다. 

 ‘이 길로 가다가 되돌아가고 싶을 땐 어쩌지?’     


 대학 입시를 앞두고서 겨우 상경계열로 가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수능점수를 받자 새로 고민이 되었다. 내 마음대로 과를 선택하기엔 점수가 간당간당 했기 때문이다.  

 대학 원서를 쓰기 전, 엄마와 함께 언니가 다니는 대학교 앞으로 놀러갔다. 나도 언니와 같은 대학을 지원할 예정이라 언니와 언니 친구에게 조언을 구할 참이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으며 내가 어느 과로 가면 좋을지 이야기 나누었다. 언니 친구가 엄마를 보며 말했다.

 “요즘 유아교육과가 인기래요. 그 과도 사범대학이거든요. 저기 건물 옆에 부설 어린이집도 있어요. 거기 교수가 숲 교육으로 유명한 사람이래요.”

 엄마와 내 고개가 그 언니 앞으로 쏠렸다. 엄마는 그 언니에게 더 자세히 얘기해보라고 했다. 

 “임용고시 치면 병설유치원으로 간대요. 완전 철밥통이죠.”

 “응? 철밥통이라고?”

 엄마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그리고 엄마는 그 언니에게 몇 번 더 질문을 했다. 옆에서 대화를 듣던 나도 마음이 좀 움직였다. 유치원 선생님이라니…. 생각은 안 해봤지만 한번 해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어디에 홀린 듯이 유아교육과로 입학했다. 여자들만 가득했던 신입생 환영회를 거쳐 과모임에도 몇 번 나갔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니다!


 그때 이후, 나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해보았다.

 ‘내가 어린 아이들을 좋아했나? (아니) 그럼 앞으로 좋아할 예정인가? (아니) 예전 꿈은 없던 일로 해도 될까? (아니, 정말 싫은데) 그럼 어떻게 할래? 재수는 할 수 없어. (그럼 과를 바꾸자!)’


 전과를 결심하고 제일 먼저 부모님 허락이 필요했다. 엄마는 괜찮은데 아버지가 고비였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 입학 후 휴대폰을 살 때도 왜 사야하는지 보고서를 작성해오라고 하신 분이다. 

 아버지에게 중대 발표를 할 게 있다고 했다. 저녁을 먹고 얘기 좀 하자고 했다. 엄마는 사과접시와 커피 잔을 아버지 앞에 놔두고 나란히 앉았다.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무릎을 꿇고 앉았다. 

 “제가 전과를 하려고요. 경영학과로요.”

 “그냥 지금 다니는 데 다니지, 쓸데없이! 거기 가서 뭐하려고 그러냐?”

 “가서 생각해볼게요. 진짜 걱정 안하게 열심히 할게요.”

 갑자기 아버지가 앞에 있던 사과 조각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다행히 사과조각을 피했고 사과는 내 뒤에 툭 떨어졌다. 파사삭! 사과 짓이겨지는 소리가 귀에 울렸다.

 “알아서 해!” 

 그래, 알아서 해, 뭐 어떻든 내가 듣고 싶었던 대답은 그거였다. 통과 그거면 됐다.


 1학년 2학기 수강신청을 하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경영학과 필수과목을 신청하며 꼼꼼히 수업시간표를 짰다. 또 어떤 과목을 신청할까 고민을 하는데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진짜 자유라는 게 이런 거 아닐까 생각도 했다. 내 꿈이 뭐였지 하고 기억도 더듬어봤다. 꼭 경영학과가 아니어도 다른 학과 교과목도 들어보고 싶었다. 다양한 교과목을 들으면 내 미래에 다양한 길이 열릴 것 같았다. 

 ‘오호, 범죄심리학 이거 멋있다. 국제금융론? 이거도 한번 들어보자.’

 나는 수업을 들으려 상대 건물과 사회대 건물, 인문대 건물을 왔다 갔다 했다. 그 생활이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학과 수업을 들을 땐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가 없어서 조금 멋쩍을 뿐이었다. 또 아는 선배가 없어서 정보를 못 얻으니 시험 칠 때 불리하다 싶긴 했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4년을 내 진로를 찾으며 보냈다. 경영학과로 전과는 했어도 나는 여전히 진로에 대한 고민을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처음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으로 멀리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조급해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 전공과 직업이 무슨 줄 잇기 문제처럼 딱딱 연결되는 건 아닌데,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전공에 매달렸나 싶다. 

 하긴 유아교육과와 경영학과는 간극이 좀 크다. 하지만 사회대, 인문대, 상과대는 배우는 것에 차이만 있을 뿐, 사회생활에 필요한 요소들을 쌓기엔 비슷비슷하다. 졸업하면 다 똑같은 사무직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 많은 선택에서도 졸업할 것이라 생각했던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조금 웃기기도 하고 좀 슬프기도 하다.


 머지않아 지훈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 후엔 문과, 이과 선택을 앞두고, 그 후엔 대학 전공 선택을 앞두고 수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뚜렷하다면 선택하기 좀 수월하겠지만, 나처럼 도중에 되돌아가고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지훈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열 마디 말보다 ‘있는 내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직 그대로다. 아직도 방황 중이다. 많은 선택을 하고나서 후회를 하고, 되돌아갈 때도 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꿈을 꾼다. 여전히 통일성 없고 산만하기까지 한 꿈이다. 

 나는 악기 연주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는 꿈을 꾸고, 동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엮어 책으로 내는 꿈을 꾼다. 기회가 되면 동화도 써보고 싶다. 그런데 내가 이런 꿈에 다가가기 위해 다시 대학에 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젠 지금 내 꿈을 실현하는 데 자격증이나 학위가 필요한 것이 아님을 안다. 오히려 대학 이외에도 배울 곳이 많고 그것이 실전 경험을 쌓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을 안다. 

 그럼 이제 지훈이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 알겠다. 

 “엄마도 아직 방황중이야. 꼭 한 가지만 선택하려 하지 마. 한번 해봐.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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