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 Mar 23. 2023

계절의 끝에서

2021년 행복 에세이 출품작

“그거 알아? 올해 두 달 지나면 끝나는 거”

분명 작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역시나 몇 번을 들어도 적응이 되지 않는 말이다. 연말이면 항상 친구들과 으레 주고받는 대화지만 이럴 때 보면 시간이 참 빠르구나 싶다. 2020년은 뭔가 숫자가 딱 떨어져서 예쁘다며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성급하게 미래를 얘기했던 탓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나는 늘 그랬듯이 이러다 말겠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못해도 그 해 여름에는 모든 상황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거라고 믿었던 것 같다. 하지만 2022년을 코앞에 둔 요즘은, 그냥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며 오늘을 보낸다.


물론 전과 같은 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내가 고3 때부터 했던 비대면 수업은 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이어졌으니까.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학교 근처 맛집을 찾아 돌아다니거나 강의가 끝나면 학식을 같이 먹고, 동아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고 싶긴 했다. 또 가족들과 그동안 미뤄왔던 여행을 가거나 해외여행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싶어서, 그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상황이 언제쯤 종식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대신 마음대로 놀러 다니지 못하는 만큼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나는 그만큼 나 자신에 대해 집중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이제야 깨달은 것이 한 가지 있다면, 나는 나 자신을 생각보다 모른다는 점이었다. 그동안은 학교 다니기 바빠서 내가 어떤 일을 좋아하는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솔직히 잘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집에서 나름대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보기도 하며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고, 매일 일기를 써보면서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보다는 내면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시기를 겪어야 하는지, 하필 왜 지금 감염병이 유행한 건지 화도 났다. 얼굴 본 지도 오래된 친구들과의 약속도 자제해야 하고,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도 마스크를 끼고 걸으며 땀범벅된 얼굴을 견뎌야 하는 것도 싫었다. 불가피한 일로 외출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혹시 내가 무증상 감염자는 아닌가, 나와 오늘 마주친 누군가가 알고 보니 확진자는 아닐까? 하며 불안해하고 걱정도 많이 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지침마저도 어기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맨날 집에 있는 나만 피해 보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맞는 것이고, 나도 그 사람들처럼 마구 놀러 다녔다가 주변에 피해를 끼치진 말자는 생각을 하며 늘 마음을 다잡곤 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매일 집과 학교를 왔다 갔다 하며 공부를 하고 눈앞의 과제를 해치우기 바빴을 테 였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까지 그랬듯이 ‘힘들다’, ‘학교 가기 싫다’, ‘피곤하다’와 같은 부정적인 말들만 밥 먹듯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나보다 더 어려운 시기에 놓인 사람들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고,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누려왔던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비록 직접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렇게 비대면으로나마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혼자라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긴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도 갑자기 이렇게 변화된 세상이 당황스러운 게 당연하다. 그리고 우리는 항상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저마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나름대로의 고충을 각기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 특히 내가 무엇보다 감사하게 느끼는 것은, 내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고 나 또한 확진된 적 없이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니다. 그냥 우리가 평범하게 지내는 일상의 순간들이 바로 행복인 것이다. 물론 누군가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게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큰 업적을 이루거나 노력해서 무언가를 성취해 낸 경험이 행복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저 바쁜 생활 속에서도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고, 몸 건강하게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이런 시기를 살아가며 모두가 전보다 더 힘들고 예민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끝나지 않는 어둠 속에 사는 기분이라, 어쩔 때는 작은 일에도 짜증이 확 나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많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가끔씩이라도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위로와 힘을 줄 수 있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큰 행복이 된다. 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가벼운 칭찬이나 응원이라도 건넨다면 아마 상대도 고마움을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바쁘더라도, 늘 조금씩만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 작가가 되기까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