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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Feb 12. 2024

모르는 게 아니라 그냥 잊어버리는 것

조금 전에 세무사 사무실 여직원과 통화했다. 출판사 폐업 신고하는 데 필요하니 내 신분증 사본을 보내달라는 것이다. 팩스로 보냈더니 판독할 수 없는 상태라며 핸드폰으로 촬영해서 보내달란다. 

    

내가 제일 피하고 싶은 시간이 바로 이런 것이다. 솔직한 심정은 이런 일은 내 일생에 없었으면 하는 일 중의 하나다. 아주 오래된 일이 아니고, 바로 얼마 전에도 사진을 찍어서 문자로 보내는 짓을 내가 한 것 같은데 나는 방법을 잊고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순전히 내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 중요한 사실도 잊고 사는 게 우리 늙은이의 현실인데 그 답답함은 모두 우리의 몫이어야 할까?    

 

몇 번을 통화하고 작업지시를 새로 받곤 하는 중에, 느닷없이 잘 받았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런 경우를 우리 영감들은, 소 뒷발로 지나가는 쥐를 잡았다고 한다. 논리, 그러니까 객관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일 거다.     

무식한 자의 공포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에는 용케 성공했지만,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짓거리를 다 순서 없이 사용해 버렸으니, 어느 짓이 이 일을 성공으로 이끈 키(key)인지를 전혀 기억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달리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하면 그 정답을 안들, 5분 후에는 또 잊을 것이기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저절로 다리에 힘이 빠진다. 

    

그런 내용을 막내아들에게 이야기했더니 웃으면서, “그걸 해결할 방법이 쉬울 것 같지 않은데요.” 한다. 

말을 잇지는 않았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사세요”라는 뜻인 것 같다. 

반박할 말은 없지만, 가슴을 핥고 지나가는 찬바람에 서러움이 섞여 있다. 

왕년에는 나도 한가락 했던 사람인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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