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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진채 Sep 16. 2024

너는 뭐꼬?

 우리 학교 2층 건물 한 채가 홀랑 다 타버렸다. 내가 중학교 1학년 겨울 방학 때 일이다. 해남 중고등학교 중 고등학생들이 사용하던 제일 큰 건물이었다. 

우리 집은 학교 부근이어서 이웃 어른들하고 그 불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 시절에는 불이 나면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던 시절이었다. 교무실이 있는 가장 큰 건물은 다 타버리고 벽돌만 앙상하게 남을 때까지 교실 옆으로 다가가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너무 갑자기 그리고 짧게 끝나고 말았다.

지금 생각하니, 그 참변이 일어난 게 벌써 60년도 훨씬 넘은 옛날이야기다. 

    

 방학이 끝나고 처음 개학한 우리를 운동장에 모아놓고 서울에서 오신 함석헌 선생님의 위로 말씀을 하셨었다. 나는 어려서 그분이 얼마나 유명한 분인지 몰랐다. 그러나 하신 말씀 중에 ‘오랑캐’를 설명하신 대목은 지금도 기억한다. 개에게 주머니를 채운 게 오랑캐라는 말씀이다. 발 네 개에다 주둥이까지 씌우니 오랑캐가 된다는 것이다. 어린 나에게는 전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었다. 중학교 1학년에게는 어려운 말이었지만 그때 하신 말씀의 내용은 아직도 한마디도 잊히지 않고 있다. 

    

 선생님은 한겨울이었지만 하얀 한복에 하얀 두루미기를 입고 흰 고무신을 신으셨던 것 같다. 머리는 검은 올 하나 없는 아주 새하얀 색이었다. 머리는 길지 않았다. 그 대신 하얀 수염은 길었다. 날이 추워 길게 말씀하지는 않았지만, 그 모습이 왜 그런지 잊히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이 설명하신 함석헌 선생님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다.       


  그게 우리 인연의 시작이자 끝이었는데, 이 나이를 먹은 나는 아직도 그날을 잊지 못하겠다. 

내가 헌책에 관심을 가진 후에는 선생님의 책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사들였다. 그 책들을 세어 보니 총 아홉권이다. 심한 것은 만지기만 해도 종이가 부스러질 것 같아서 감히 펴보지도 못한 책이 서너 권이다. 선생님께서 가신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아직 그 책들을 잘 보관하고 있다.  

   

 얼마 전, 그래 진짜 바로 얼마 전에 이상한 인간이 나타났다. 내가 설명하지 않아도 다 알 거야 아마. 

시류를 타고 등장한 그 인간의 외모는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과 비슷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필 필요도 없이 그 허구(虛構)는 바로 드러난다. 백발이라 하나 순도(純度)가 떨어진다. 흰 것 중에 섞인 검은 머리칼이 너무 많고 거칠디. 나처럼 어리숙한 사람의 눈에도 보이는 것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메뚜기도 오뉴월이 한철이라고 지금은 그가 추앙(推仰)받고 있다. 그게 현실이니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모든 역사는 가고 또 그와 유사한 형식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속 보이는 말 같지만 내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도 백발이다. 수염을 길게 길러본 적은 없지만 짧은 상태로 봐도 온통 하얗다. 물론 눈썹도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말 딱 한 마디. 이건 천기(天氣)를 누설하는 것 같아서 그러는데 되도록 혼자서 읽으시라.

나는 30이 넘으면서부터 자라는 털이 다 백색으로 변했는데 딱 한 곳은 선명한 흑색이었다. 그게 어디냐 하면, 그게 사람의 중앙 부위인데, 거시기라고 하기도 그렇고·····. 좀 민망한데, 그곳이라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쉬 하는 데 사용하는 거 말이야. 땀이 나네.


 환갑이 지날 때까지도 그곳만은 칠흑 같은 상태로 변하지 않는 거야. 신기한 일이지? 그런데 이게 뭔 일이야! 칠십이 지나자 이게 돌변한 거야. 지금은 80%가 하얀색으로 변했어! 쉽게 설명하면, 용산 어딘가에 산다는 그 인간의 머리칼하고 비슷하다는 뜻이야. 희한하지?    

  

 나는 이 변화에 심오한 어떤 의미가 숨어 있다고 믿는다. 직접 보고도 알 수 없는 것들을, 흘러가는 어떤 흔들림에서 깨우침을 얻었던 기억은 우리에게는 넘치도록 흔하다. 이런 내 마음의 파문(波紋)을 누구에게 물어볼까 하다가 동티가 붙을까 봐서 지금까지 입 닫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나라는 놈은 누가 잘만 키우면 아주 클 것 같아! 나이가 벌써 칠십을 훌쩍 넘어버려서 이제 크면 얼마나 클까 하는 걱정이 있지만 말이다. 

 생각이 있는 사람은 남모르게 연락 한 번 줘봐. 궁금하다면, 내 흰머리하고 부끄러운 거시기도 다 보여줄게!!!



2024. 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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