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도 하순으로 치닫는 지금, 산책길 쉼터에 여름에는 안 보이던 빗자루가 다시 보인다. 누군가가 보관하고 있다가 떨어지는 낙엽을 치우는 데 필요하게 되자 갖다 놓은 모양이다.
짐작건대 이런 일은 구청에서 하는 것이 아니다. 산책로 담당 청소 인력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나이 든 노인들이 의견을 모았을 것이다. 우리 노인들은 이런 일은 충분하게 해낼 수 있는 분들이다. 나는 그 빗자루를 볼 때마다, 누군가의 따뜻한 정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을 배려한다는 건 여유가 없더라도 자신의 힘에 맞게 베풀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남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다.
내가 어렸을 때의 기억이다. 지금은 돌아봐도 찾을 수 없지만, 그때는 거지들이 많았다. 부모 잃은 아이, 전쟁 통에 피난 왔다가 먹고 사는 게 어려워, 의탁할 자식이 없어서, 그렇게 나름의 한을 품은 사람이 적잖았다. 이들을 돌보는 기관은 없었다. 고작해야 외국의 도움을 받는 종교단체에서 나섰지만, 전쟁을 치른 후였기에 힘이 모자랐다.
계절이 겨울 문턱을 밟는 순간 거처가 없는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 그래서 동냥할 수 있는 동네가 멀지 않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곳에 빈자리가 있으면 그곳으로 모인다. 볕이 바른 양지를 찾아 드문드문 앉은 그들은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본 기억이 없다. 낮게 뜬 해를 향하여 그냥 멍하니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9월 하순으로 접어들면 멀쩡하던 나무의 잎은 버얼겋게 물들어, 의지하던 가지에서 떨어져 저 밑바닥에 구르게 된다. 오면 또 가야 하는 게 삶의 원칙이다.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한 올도 빠지지 않고 하얗게 세어버린 내 머리는 내게 내 길을 가리키는 것 같다.
“니도 이제 마이 살았다 아이가. 이제 고마 갈 준비 하거레이.”
2024.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