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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케이트 Apr 18. 2024

01.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아침,
난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일 년 내내 여행을 계획하는 인간이 되었다.     

물론 그 계획 중 실현되는 건 한두 건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늘 여행을 꿈꾼다.     

비행기표를 알아보고, 호텔을 알아보고,     

그리고 카페(난 커피 중독자다. 아니 카페 중독자라고 해야 하나)를 알아본다.     

이 모든 과정이 이미 여행의 시작이다.     


내가 소위 말하는 역마살을 타고났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난 그 반대의 인간형이니까.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아웃 도어(out-door) 형’ 인간이기보다     

난 분명 ‘인 도어(in-door) 형’ 인간이다.     

외출 준비를 하다가도 모든 게 다 귀찮아지면 주저앉는다.     

그리고 외출 계획이라고는 1도 없었던 것처럼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하는 사람이다.     

(물론 상대가 있는 약속일 경우에는 다르다. 책임형 인간^^)     


이런 인간이지만,     

이상하게 여행은 좋아한다.     

삶이 권태로 가득 찼다고 생각되는 순간,     

커피 맛집이라고 해서 찾아갔는데,     

커피 맛이 맹물처럼 느껴지는 순간,     

EBS '세계테마기행‘ 알래스카 편을 보다가     

너무 시린 하늘에 마음까지 시려오는 순간,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느라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리는 어느 아침,     

그리고 무엇보다 올 듯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다     

지친 2월의 어느 오후     

캘리포니아의 푸른 하늘이 가슴에 사무쳐올 때,     

난 여행을 계획한다.          


내가 언제부터 여행을 좋아했을까,      

굳이 따지며 생각해보면,     

그 시작은 TV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니면 평생 해외여행이라고는 해보지 않은     

아버지 탓인지도(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다.     

해외여행이 그렇게 흔하지 않은 때였다.     

주변에 해외에 나갔다 왔다는 사람이 별로 없던 시절이었다.     

TV에는 ‘기차 타고 세계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이 하는 시간에 아버지와 난 어김없이 TV 앞에 앉아,     

그 프로를 시청했다(채널을 돌리다 리모컨을 멈췄던 건 아버지다).  

그 장면 속에 어머니와 동생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아버지와 나만 그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것 같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그 프로는 셀럽들(공영방송 KBS1에서 했던 거라     

주로 아나운서였지만, 최불암이 나왔던 것도 기억난다)의 기차 여행기를

담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차라는 이동 수단이 테마다 보니      

기차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유럽이 여행지로 자주 나왔다.    

그 프로를 보며 처음으로 여행에 대한 로망과 열망, 열정을 가졌던 것 같다.     

유럽이니까 예쁜 건물, 고풍스러운 골목, 미술책에서 봤던 고흐 그림들,     

어린 내게 여행이라는 환상을 심어줄 요소들이 가득했다.     

실제로 그 골목을 걷는 느낌은 어떨지,      

고흐 그림을 실물로 영접했는 때는     

미술책과는 어떤 다른 감흥이 올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마도 내 첫 번째 해외 여행지는 파리였다.     

아니, 사실 잠깐 갔다 오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그곳에서 살아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부산이라는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과감히, 호기롭게, 자신만만하게 유럽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photo by 이케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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