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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케이트 Jun 01. 2021

파리에 가고 싶을 때 나는 이 영화를 본다(스포 주의)

파리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는 사실 너무도 많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볼 때마다 설렘을 느끼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은 영화를 꼽으라면 ‘비포 선셋’ ‘미드나잇 인 파리’ 그리고 ‘새 구두를 사야 해’다.


'비포 센셋’은 그 유명한 ‘비포 선라이즈’의 2편이다. 1편인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하루 동안 비엔나를 여행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내용이다. 


대학생 때 그 영화를 보고 밤새 뒤척였던 경험이 있다. 우리가 여행지에서 만나고 싶은 로망이 다 담긴 영화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였다. 처음 만난 사람과 죽음, 사랑에 대해 그렇게 철학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렇게 코드가 맞는 이성을 만날 수 있을까. 당시에는 그런 사람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고,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싶었다.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의 9년 뒤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원에서 애틋한 하룻밤을 보낸 남녀는 6개월 뒤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지지만 결국 다시 만나지 못했다. 


파리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두 사람. 그동안 여러 가지 상황들이 변해있고, 두 사람은 9년 전 순수했던 그 청춘들도 아니지만, 이번에도 두 사람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서로가 ‘소울메이트’ 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느낀다. 



두 사람의 대화 사이로 아름다운 파리 풍경들이 쉼 없이 지나간다. 특히 노을을 배경으로 센강 유람선 위에 서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이다. 살면서 한 번쯤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다시 보게 된 마술 같은 상황. 다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설렘. 이런 것들과 어우러진 파리 풍경이 너무 예쁘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의 과거와 만날 수 있는 영화다. 파리의 가장 좋았던 시절을 ‘벨 에포크(Belle epoque)’라고 하는데 주인공이 그 직후인 1920년대로 과거 여행을 떠난다. 


소설가 길은 쓰던 소설이 막히자 막막해하지만, 약혼자는 자신의 예술 세계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런 길이 약혼자와 파리에 여행을 갔다가 한밤중에 혼자 정체불명의 마차를 타게 된다. 그 마차는 피츠제럴드, 헤밍웨이 등과 같은 거장이 살던 시대로 그를 인도한다. 


파리를 걷다 보면 우아한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튀어나와도 아무렇지 않을 것 같은 동네들을 자주 만나곤 하는데, 우디 앨런 감독 역시 그런 생각을 했나 보다. 분명 세트는 아닐 건데, 그냥 파리 시내에서 촬영한 것 같은데 1920년대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지나가는 행인들의 옷차림만 그 시대로 바꾸니 바로 시간 여행이 가능해지는 거다.


이 영화를 보면서 길에게 심하게 공감했다.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인지라 길의 마음이 백분 이해가 됐다고 해야 하나. 어쩌면 감독이 길에게 자신의 마음을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영감을 얻기 위해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었던 마음. 그리고 헤밍웨이를 만나 자신이 쓴 시나리오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었던 마음. 


길은 거장들을 만난 뒤 자신의 소설에 속도를 낸다. 그들과 대화하며 또 어떤 여인과 사랑에 빠지며 창작의 실마리를 얻은 거다. 글이 막힐 때마다 여행을 생각하는 나를 돌아보며 창작자들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싶었다.


이 영화는 우리가 갈 수 없는 1920년대의 파리 모습을 만나게 해 준다. 아울러 길과 아네즈(약혼녀)의 관광을 통해 현재의 파리 모습도 함께 볼 수 있다.     



세 번째 영화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라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나도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하는 것을 보고 알게 된 영화다. 사진작가 센과 프랑스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는 아오이의 ‘썸’을 담고 있는 영화다. 아오이의 구두 굽이 부러지는 사건으로 우연히 만나게 된 두 사람은 서로의 사정을 알게 되며 점점 가까워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느끼지만, 파리에 여행을 왔던 센은 결국 일본으로 향한다. 


섬세한 감정들을 잘 담아내는 일본 영화 특유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는 영화다. 파리의 풍경 역시 일본 감성으로 담아내서인지 앞의 두 영화와는 다르게 다가온다. 남녀의 미묘한 감정, 그 사이로 보이는 파리의 햇살, 에펠탑, 센강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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