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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Jul 18. 2023

빈&파리 기록 - 8

에필로그2

거창하게 말하긴 했지만, 사실 한 인간의 체계는 그 사람의 사고방식을 의미한다. Ai를 생각해 보자. 물론 그 목적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기본적으로 Ai는 ‘학습을 통한 경험의 누적’을 통해 성장한다. 신경망에 데이터를 학습시키고, 신경망들을 다시 쌓는다.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딥러닝’의 방법이다. 학습을 통해 얻어 낸 규칙을 통해 인공지능은 주어진 문제를 풀어낸다. 말 그대로 규칙은 체계이고, 사고방식이다.

다들 ‘알파고’에 대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프로 바둑 기사(그것도 프로 중 최고수 급의)를 꺾은 최초, 최강의 인공지능. 그렇다면, 혹시 알파고가 다음 수를 계산하는 화면을 본 적이 있는 가? 알파고가 다음에 놓을 수를 계산할 때, 모니터 속 바둑판이 점점 벌겋게 물든다. 본인이 학습하여 얻어낸 체계 상 승률을 낮추는 다음 착수 지점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다. 착수 가능 지점은 점점 좁아지고, 결국 기대 승률이 가장 높은 지점만이 남게 된다.

알파고는 모든 지점에 대해 본인의 잣대를 들이미는 것일까? 아쉽게도 그것은 불가능하다. 바둑의 모든 경우의 수는 10의 약 171 제곱수라고 한다. 우주 내에 있는 원자의 수보다도 경우의 수가 많다.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데에만, 서버용 컴퓨터로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알파고는, 물론 설정에 따라 다르지만, 수 초 내에 한 수씩 두는 속도로도 인간보다 아득한 실력을 뽐낸다.

알파고의 방법론에 그 해답이 있다. 방금 언급한 ‘벌게지는 바둑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알파고는 먼저 바둑판을 이리저리 쪼갠다. 그리고는 각 권역별로 ‘두지 않을 법한 수’를 걸러낸다. 가령, 알파고의 기보 학습 결과 초-중반에는 1선에 수를 두는 것이 승률을 매우 크게 떨어뜨린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하자. 그러면 각 권역에서 1선에 해당하는 곳들은 벌겋게 칠해진다(물론 이것은 예시이다. 애당초 알파고는 인간의 ‘1선’을 ‘1선’이라 보지 않는다). 그다음에는 다음으로 승률을 떨어뜨리는 지점들이 벌겋게, 그다음에는. 위와 같은 방법을 지속 적용하여 몇 군데로 착수할 법한 지점을 압축시킨 후, 계산하여 본인이 가진 체계 하에서 가장 승률이 낮지 않은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 마디로, 알파고는 모든 곳을 계산하지 않는다. ‘그럴 법 한’ 곳만을 계산하는 것이다(엄밀히 말하면 복잡한 통계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지만, 이는 굳이 논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없기도 하고.).

인간 역시 마찬가지이다. 외려, 인간은 데이터 처리 가능량이 인공지능에 비해 압도적으로 모자라기 때문에, ‘그럴 법 한’ 방법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알파고에게 통계의 방법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그와 비슷한 ‘유추’ 혹은 ‘동형화’의 방법이 있다. A라는 상황이 주어졌다고 가정하자. 인간은 먼저 상황에 대한 정보를 종합한다. 그다음, 이 전까지 본인의 해결 사례 중 이와 가장 비슷한 사례를 찾아낸다. 가령 그 사례를 B라 해보자. 그러면 A의 구성요소 a1, a2, … an는 각각 b1, b2, … bn에 대응한다. 이에 따라 B의 해결 방법론을 A에 적용한다. 아주 운이 좋게도 문제가 해결된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인간은 an을 an’로 치환한다. 문제가 풀릴 듯하다. 지속적인 수정 작업을 통해 A라는 상황을 풀어낸다. 결국 인간의 체계, 즉 사고방식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재확정되며, 확장된다.

실제로 사고의 본질이 무엇이냐, 하면 학계에서 조차 아직까지 의견이 분분한 채 하나로 답이 수렴하지는 않았지만, ‘유추’에 그 본질이 있다 말하는 의견이 존재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 중 하나로 불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역시 유추의 방법을 통해 발견되었다. 그 외에 너무나 많은 이론과 방법론들이 인간의 유추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앞으로 숱하게 논할 비트겐슈타인(이 인간을 보는 것이 여행의 주 목적이었다) 역시 본인, 그리고 다른 인간들의 업적들을 ‘기발한 유추(비유)의 발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따라서, 위의 내용을 종합한다면, ‘유추의 적용을 통한 사고방식의 변화’를 이번 자주 연수의 궁극적 목적으로 보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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